[만화리뷰]<백귀야행>,서글프고 아름다운 괴기환상담

  • 입력 2001년 3월 27일 12시 43분


자다 일어나 부시시한 머리로 아침마다 지각하기 일쑤인 고등학생 리쓰는 어린 시절부터 남들은 보고 들을 수 없는 것들을 경험해 왔다. 밥상머리에 웅크리고 있는 잡귀에서부터 현세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떠돌고 있는 몇 백년된 원혼들까지도 리쓰에게는 환상이 아닌 현실의 일부다.

그러한 리쓰의 할아버지 이이지마 가규는 다름아닌 일본 전통 요괴들의 변화에 관한 묘사로 이름 높던 괴기환상 소설가였다. 그 묘사가 마치 직접 보고 한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리쓰의 조부 역시 특별한 능력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리쓰는 도교와 음양술까지 정통하던 할아버지로부터 강한 영력과 수호요괴 아오아라시를 물려 받는다.

용의 형태를 띄고 있는 요괴 아오아라시는 급사한 리쓰의 아버지의 몸을 빌어 생활하고 있지만 먹는것만 밝혀대는 천방지축형. 위험천만인 순간에도 리쓰를 지키는 일보다는 먹이 사냥에 더 관심이 많다. 여기에 우연찮게 리쓰의 도움을 받게된 까마귀 요괴 오구로와 오지로까지 끼어들면서 평범한 고등학생의 일상은 평범할 날이 없는데...

리쓰는 자신의 남다른 능력을 과용하거나 과신하지 않으며 굳이 외면하려 애쓰지도 않는다. 남들에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봐야하는 운명이니까. 할리우드 영화 <식스센스>에서 죽은 자들의 영혼을 볼 수 있던 소년의 극심한 공포와 비슷한 소재를 다루고 있는 만화 <백귀야행>은 시종일관 평온한 것이 특징이다. 영적인 존재의 공존을 존중해온 아시아적 생활관이 녹아 있는 것이다.

그러니 제아무리 요괴와 귀신이 난무해도 <백귀야행>은 저주와 불행의 그림자로 얼룩진 공포물로 둔갑하지 않는다. 무섭고 괴기스러운 동시에 어딘가 우스꽝스럽고 정겨운 요괴들과 평안치 못하게 세상을 등진 영혼들의 갖가지 사연, 그리고 마음 따뜻해지는 약간의 기적이 이루어내는 자연스런 조화 때문일 것이다.

살아 있는 것과 그렇지 못한것, 현실과 이계,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현상들과 케케묵은 전설, 인간의 이기와 욕망이 뒤섞여 빚어내는 일화들은 할머니 무릎을 베고 듣던 옛날 이야기처럼 신비롭고 아득하다. 비극과 희극, 잔혹한 배신과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가 공존하는 이 서글프고 아름다운 환상담은 애틋한 마음으로 다음 행보를 기대하게 만든다.

김지혜 <동아닷컴 객원기자> lemonjam@nownur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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