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우리 동네 맛집-교보빌딩 주변의 맛집들

  • 입력 2001년 3월 27일 11시 43분


교보빌딩 뒷편은 조선시대 서민의 애환이 배어 있는 좁은 골목, 피맛골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조선시대 종로길을 지나는 양반들에게 괜히 머리를 조아리기가 싫어 피해 다니던 서민들의 뒷골목으로, 말 타고 다니던 지체 높은 사람들을 피해 다닌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 피맛골<피마동>. 지금은 피카디리 극장이 있는 종로3가까지 이어진다.

지금의 피맛골은 식당골목이다.

그러나 어수선한 여느 먹자골목과는 달리 훈훈한 인심과 서민적 운치가 넘치는 곳이다. 값도 싸면서 양심적인 맛을 간직한 식당들이 많아 이 골목은 밤낮 없이 호황이다.

저녁 무렵엔 나이 지긋한 백발의 노신사들이 젊은이들과 긴 나무의자를 놓고 섞여 앉아 술잔을 기울이는 모습이 한층 정감을 더하고, 모두들 막걸리들을 많이 마시는 모습도 이 동네만의 이채로운 모습이다.

미국대사관에서 교보문고쪽으로 내려오는 길은 80년대까지만 해도 빈대떡 골목으로 불리던 곳. 지금도 족발과 빈대떡을 파는 집들이 서너 집 남아있다. 경원집, 장원족발을 지나 손님이 가장 많은 집은 1.청일집<732-2626>. 부뚜막에서 부지런히 맷돌에 녹두를 갈며 빈대떡집임을 은근히 과시하는 이 집 앞을 지나자면 빈대떡 부치는 돼지기름 냄새가 진하게 코에 와 닿는다. 돼지기름 냄새를 은근히 풍기는 바싹한 빈대떡이 정말 고소하다. 찌그러진 양은냄비에 담아주는 조개탕, 족발, 어느 것이든 막걸리 한 사발과 잘 어울리는 안주감이다. 그 옆의 2.미진호프<730-6198>는 50년 전통의 메밀국수집. 지금은 저녁시간에 생맥주를 팔아 미진호프로 옥호를 바꿨지만, 옛날엔 '미진분식'하면 모르는 사람들이 없었다. 썰렁하고 매력 없는 분위기지만 달짝지근하면서 너무 진하지 않은 개운한 메밀다시<쯔유> 만큼은 아직도 여전하다.

피맛골로 접어들면 빈대떡집의 대명사 3.열차집<734-2849>이 버티고 있다.

이 집 또한 50년이 넘는 전통의 유서 깊은 빈대떡집. 긴 나무의자에 다닥다닥 붙어 앉아 막걸리를 마시는 모습이 정겹다. 빈대떡엔 달랑 돼지고기 몇 점이 토핑의 전부로, 그저 녹두를 고소하게 지져 낸 녹두 지짐이란 표현이 적당하다. 부드러운 굴전도 맛있고 조개탕도 개운하다. 양파를 잔뜩 썰어 넣은 양녕장과 쌉쌉하고 매콤한 어리굴젓은 이 집의 트레이드마크. 조금 더 들어가면 4.대림식당<739-1665>의 주인아저씨가 멋진 모자를 쓰고 부지런히 생선을 뒤집고 있다. 허름한 생선구이집으론 어울리지 않게 밖에 걸어놓은 영어 메뉴판이 눈길을 끈다. 잘 구운 생선구이도 맛있고 구수한 누룽지 마무리도 일품이지만, 퉁명스런 주인아줌마 덕분에 점수를 깎인다. 점심시간엔 자리잡기가 쉽지 않다.

대림식당과 마주보고 있는 함경도 순대집, 5.삼성집<730-8802>도 꽤나 매스컴을 많이 타는 집이다.

찹쌀, 녹두, 돼지고기, 배추 등으로 대창에 소를 채운 찰지고 부드러운 함경도 왕순대가 전문. 구수한 맛이지만, 많이 먹다보면 다소 느끼한 감도 없지 않다.

들깨가루가 많이 들어간 진한 순대국은 국물이 구수하지만, 누린 듯한 뒷맛도 있다.

삼성집을 나오면 바로 앞에 유명한 6.서린낙지<735-0670>가 있다. 이 집만의 특별메뉴 '불판'.

베이컨, 소세지, 양파, 김치를 넣고 지글지글 볶다가 그 위에 콩나물을 부어 얹고 매운 낙지볶음 국물을 넣어가며 버무려 먹는 것. 여럿이 간다면 '불판'과 낙지볶음을 반반씩 시켜 같이 볶아 먹으면 더욱 맛있다.

이 집만의 별난 이 짬뽕식 음식을 먹기 위해 점심시간엔 긴 줄이 이어진다. 한번은 먹어볼 만한 맛.

서린낙지와 생선구이집 함흥집 사이의 더 좁은 샛골목으로 꺾어 들어가면 또 한번 줄을 서서 기다리는 긴 행렬과 마주친다. 7.청진식당<732-8038>입구. 돼지불고기와 오징어볶음이 전문이다. 그런데 이 집 역시 먹는 방법이 독특하다. 돼지불고기와 오징어볶음을 한데 넣고 볶는 것. 얇게 썬 돼지고기를 고추장과 간장으로 양념을 한 돼지불고기와 주방에서 조리하여 따로 접시에 내오는 오징어볶음을 불판에 같이 올리고 볶는다. 각기의 맛으로도 손색이 없지만 불고기와 오징어볶음의 맛이 섞이며 내는 맛의 시너지효과가 대단하다. 어디서도 먹어볼 수 없는 이 집만의 맛이지만, 이 맛이 별미다. 일인분에 4000원으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양도 푸짐하다.

청진식당 앞집은 훈훈한 8.남도식당<777-4306>. 3000원짜리 백반으로는 믿기지 않는 상차림이다.

반찬은 그때그때 바뀌지만 15여 가지의 반찬 모두에 정성스런 손맛이 배어 있다. 4000원 하는 한정식엔 게장, 닭볶음 등이 추가되는데, 무엇보다 이 집의 별미는 따라 나오는 선지국. 그 유명한 청진옥의 선지국보다 맛이 낫다. 피맛골에서만 맛볼 수 있는 푸짐한 3000원짜리 백반이다. 친절한 식당사람들의 웃음도 기분 좋은 집.

피맛골 줄기는 아니지만, 한 골목위로 올라가면 쇠힘줄탕<스지>으로 유명한 9.고바우집<733-4381>이 있다. 사골과 함께 쫄깃한 쇠힘줄을 넣어 끓인 구수한 진국에서 입에 감쳐드는 진한 맛이 느껴진다. 같이 나오는 고추장아찌, 파김치에서도 이 집만의 별미. 요즘 광우병 때문에 손님이 줄어 3000원의 저렴한 홍어회국수를 특별 점심메뉴로 내놓고 있다.

저녁시간엔 등심구이와 차돌박이만을 하는데, 가격도 적당하고 육질이 신선해 광우병을 걱정하지 않는 손님들은 한번 들러 고기맛을 볼 만한 곳이다.

[eatncook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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