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유석춘/개혁해야 할 ‘언론개혁’

입력 2001-03-20 18:48수정 2009-09-21 0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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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론적 의미에서 ‘언론매체의 개혁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반대할 사람이 있을까. 사실관계를 정확하게 반영하는 보도와 이를 바탕으로 책임 있는 주장을 전개하는 논평이 언론의 중심적 역할이라면 아직도 우리 언론은 부족한 부분이 많이 있다. 왜냐 하면 사실관계의 왜곡으로 피해를 보는 경우가 적지 않고, 가치판단이 개입된 편집과 논평의 결과가 사후에 적절치 못한 것으로 드러난 경우에도 책임을 묻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언론은 끊임없이 개혁돼야 한다.

그러나 최근 벌어지고 있는 언론개혁에 관한 논란은 이런 본질적인 문제를 제쳐 두고 가지에 매달려 진행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소유구조가 ‘족벌적’이냐 ‘국민적’이냐를 기준으로 선악을 구분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소유구조가 ‘국민적’이면 기사의 품질이 좋고 ‘족벌적’이면 품질이 나쁜가.

▼소유구조따라 선악결정▼

사회주의 체제가 왜 몰락했는지를 생각해 보면 이 전제가 얼마나 비현실적인지를 너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심지어 최근에는 자본주의 국가의 공기업마저 민영화라는 흐름에 편입되고 있음을 생각하면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은 더욱 분명해진다. 소유구조와 기업이 생산한 물건의 품질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 오히려 소유구조가 국민적이면 품질이 떨어지는 경향이 발견된다. 아무도 끝까지 책임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 주장에 대한 두 가지 반론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언론의 품질을 어떻게 민간기업이 생산한 상품과 같은 차원에서 비교하느냐는 반론이다. 언론의 기능은 공익적인 데 반해 민간기업의 기능은 사적 이윤추구라는 설명이 으레 뒤를 잇는다. 만약 그렇다면 공익을 위한 언론이 부실하면 공적 자금을 투입해야 하는가. 또 소유구조를 말할 때는 언론의 공익성을 강조하고, 세무조사를 말할 때는 언론의 영리성을 강조하는 논리는 일관성이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둘째, 특정 가문이 언론을 소유하고 있으면 편집권이 침해돼 기사의 품질이 떨어진다는 주장이다.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그렇지만 기사의 품질이 떨어지는지 혹은 향상되는지를 판단하는 주체가 누구여야 하는가. 두말할 것도 없이 독자다. 개별 독자가 판단해야 할 몫을 ‘운동’의 방법으로 강제하는 일은 일종의 인민재판이다.

이 주장에는 다음과 같은 반론이 있을 수 있다. 현재의 언론시장 구조가 공정한 경쟁을 뒷받침하지 않기 때문에 운동을 통해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특정 가문이 소유하고 있는 언론들이 현재 누리고 있는 시장 지배력은 어떻게 형성된 것인가. 식민권력과 독재권력에 야합해 이뤄진 부도덕한 결과일 뿐인가. 부분적으로 사실일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현재 일부 언론이 공격 대상으로 삼고 있는 신문들이 독립과 민주화에 상당한 기여를 했다는 주장 또한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나아가 이 두 가지가 모두 사실임을 모르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이런 상황을 감안한다면 현재의 시장지배력을 국민의 의식수준이 낮기 때문이라고 치부하거나 권언유착의 결과로만 접근하는 주장은 독선적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우리 국민은 절대 바보가 아니기 때문이다.

언론의 품질에 대한 국민의 평가가 시장기제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는 이상 소유구조에 의한 편집권의 독립이나 예속은 걱정할 일이 못된다. 독자들의 선택권이 열려 있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오히려 시장기제에 의한 감시를 거의 받지 않는 특권적 위치에 있는 신문이 유력지들을 비판하는 것은 하나의 코미디일 뿐이다. 또한 권력의 ‘나팔수’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족벌언론’ 비판에 열을 올리는 방송 역시 시장기제에 의한 통제에서 벗어나 있기는 마찬가지다.

▼독자들의 판단에 맡겨야▼

국민적 소유구조를 내세우며 ‘족벌언론 타도’를 부르짖고 있는 신문의 모습이 애처롭다. 시장지배력이 약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사의 품질을 강화해야 하거늘 오히려 기사의 품질을 떨어뜨리는 방향으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확인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부실한 취재로 대수롭지도 않은 내용을 선정적으로 보도하는 행태야말로 개혁의 대상이 돼야 한다.

유석춘(연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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