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득헌의 스포츠 세상]“잘못했지만 못고쳐”

  • 입력 2001년 3월 12일 18시 37분


봄의 색깔이 보인다. 남향의 둔덕은 하루하루 파릇해지고 있다. 스포츠 그라운드에서는 봄의 냄새가 난다. 엊그제부터는 프로야구 시범경기가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더 따듯해져도 꽃이 피지 않을 것 같은 스포츠 얘기를 하나 해야겠다. “새봄도 오는데 산뜻한 것이나 하나 쓰지, 별로 재미도 없는 것을 골라 쓰려는 심보가 뭐야”라고 나무라면 달게 받겠다.

결론부터 말하면 대한체육회의 집행부 구성에 잘못이 있었는데 체육회는 고칠 뜻이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사실 대한체육회의 임원진 구성에 대해 나는 별 관심이 없다. 이사수가 47명인 대한체육회 이사회나 위원수가 76명이나 되는 대한올림픽위원회 위원총회의 효율성을 높게 평가하지 않는 데다 대한체육회가 우리나라 스포츠 본산의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서도 예전과는 다른 시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주 한 학술토론회장에서 만난 나정선 한국여성체육학회장의 말은 내 생각이 완전히 빗나간 게 아님을 확인케 했다.

우선 나회장의 말. “정관에 의한 규정에 따라 체육계 몇몇 단체장은 당연직 이사로 돼 있고, 한국여성체육학회장도 그 중의 하나인데 내 이름이 이사 명단에서 제외돼 있었다. 내 이름이 빠져서 섭섭한 게 아니다. 체육회가 규정을 어긴 것이다. 여성체육학회의 위상을 무시하는 일 아닌가. 오늘이 바로 유엔이 정한 여성의 날인데….”

하지만 정말 딱한 일은 체육회의 사후 처리이다. 나회장의 문의에 처음에는 학회장이 이사에 들어있는데 ‘왜 그러냐’라고 했다고 한다. 차기 학회장을 이사로 뽑는 잘못을 한 것인데 그것을 지적했더니 곧 차기 학회장의 이사 선임은 개인자격이었다고 말을 바꾸었다고 한다.

잘못은 이어진다. 현 학회장을 이사로 추가하면 정관에 따른 이사수의 초과 문제가 생기게 되자 당연직 이사가 될 사람이 빠진 경우가 또 있다며 ‘대한올림픽위원회 위원으로 넣었으니 된 것 아닌가’라고 했다는 것이다. 통합된 조직이라 해도 대한체육회와 대한올림픽위원회는 설립근거와 역할이 다른데 참으로 이상한 해법이다.

또 있다. 당연직 이사직을 요청하는 단체가 많아 금명 그 규정을 폐지키로 했는데 ‘미리 규정이 적용된 것으로 이해’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법치(法治)란 말을 꺼내기는 뭣하지만 체육회의 논리는 억지라고 할 밖에 없다.

필자의 물음에 체육회는 결국 잘못을 인정했다. 하지만 여성체육학회의 시정 요구는 검토하겠다고 답변했다.

공자(孔子)님도 잘못이 있으면 고치기를 꺼리지 말아야 한다(過則勿憚改)고 이르셨다. 잘못보다도 잘못을 고치지 않는 것이 더 큰 잘못이란 말씀 아닌가.

<논설위원·체육학박사>dhy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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