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사커서핑]딱 한 골이면 족하다!

입력 2001-03-12 16:09수정 2009-09-21 0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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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세계 축구 역사의 위대한 지존이신 펠레 선생께서 말씀하시기를, '자고로 축구 경기는 3대2의 스코어가 제일 재미 있느니라!' 그래서, '3대2'의 스코어를 두고 ‘펠레 스코어’라고 한다. 이것보다 골이 많이 터지면 경기가 싱거워지고, 적게 터지면 지루하고 답답한 경기가 된다는 말이다.

또한 사람들은 축구 경기의 최대 단점으로 '점수가 많이 나지 않는다'는 점을 이야기한다. 심지어 아예 점수가 나지 않은 채 경기가 끝나기도 하며, 90분 경기 중에서 골이 터지는 시간은 불과 몇 초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니... 골을 즐길 수 없는 시간이 축구 경기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사람들은 결국 '골이 좀처럼 터지지 않는 지루한 경기'를 보아야 한다. 그래서 어떤 스포츠 팬은 농구를 선택했다나?

도대체 몇 골이 어떻게 터지면 재미있는 경기가 될까? 그리고, 그렇게 여러 골이 터지면 사람들이 재미있어 하고 축구장에 사람이 꽉꽉 들어 찰까? 축구팬 수천, 수만명을 모아 놓고 설문조사를 해봐? 아니면, 웬 심리학자가 나와서 '인간은 최소한 20분 간격으로 자극이 주어져야 하므로 최소한 20분에 한골, 즉 한 경기당 4골 이상이 터져야 재미있는 경기가 될 것이다' 따위의 말을 해 준다면 답이 보일까? 그리고… 과연 한 경기당 4골 이상씩 터져 준다면 무심한 한국의 축구팬들이 프로 축구 경기를 보기 위해 축구장을 찾을까?

축구 경기를 '골'만 가지고 본다면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없을 것이다. '골'이라는 것이 축구 경기의 승부를 결정짓는 가장 큰 요소인 점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축구의 재미'를 차지하는 모든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경기의 엑기스만 모아 놓은 '골 모음'을 보기 보다는 밤을 설쳐 가면서 생중계를 시청하거나 경기장을 찾는 것이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3대0 보다 재미있고 3대2 보다 박진감 넘치는 1대0 경기가 있는 것이다.

축구뿐만 아니라 모든 경기에 있어서 가장 큰 재미의 요소는 '승부의 묘미'일 것이다. '승부에 집착하지 말자' 라든가 '참가하는 데에 의미를 두자'는 말의 의미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경기의 가장 기본적인 재미는 승패를 가르는 승부의 속성이다. 그리고, 축구 경기에서 승부를 결정짓는 기준이 바로 골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골을 즐기기 위해 축구를 보는가? 아니면, 승부를 맛보기 위해 축구를 보는가?

골을 보며 즐긴다는 말은 나 자신이 승부에는 별 관심이 없는 '제3자'의 입장이라는 말과 다름 없다. 누가 이기는지는 관심이 없고, 그보다는 어떤 골이 어떻게 터질 것인가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당연히 골 많이 터지고, 이왕이면 멋진 골이 극적인 상황에서 터지는 경기를 좋아하게 된다. 이 사람에게 있어서 축구 경기는 평양 교예단의 묘기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리고, 평양 교예단의 화려한 몸놀림에 비한다면 축구는 정말 볼 것 없는 지루한 공놀이 불과하다. 이래서야 축구가 재미있을 수 있을까…

물론 가끔씩 누가 봐도 멋있는 명승부가 펼쳐지기도 한다. 비록 경기를 하고 있는 두 팀은 나와 상관이 없지만, 경기 내용이 워낙 훌륭하고 극적인 장면이 많이 나오는 경기를 말한다. 1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이 경기를 본 후 사람들은 말한다. “야~ 정말이지 축구 이정도만 하면, 나 이제부터 프로 축구 본다!”

하지만, 이 사람은 이미 가장 멋진 경기 하나를 보았기 때문에 당분간은 재미 없는 경기만을 보게 될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얼마 안가서 축구는 더 이상 재미가 없기 때문에 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한 팀이 자기 팀으로 되는 순간부터 '재미'라는 요소는 완전히 달라진다. 골은 나의 쾌감을 좀 더 증진시키는 역할은 하지만 '승부'에 우선할 수는 없다. 1대0으로라도 이기는 것이 99대100으로 지는 것보다 훨씬 즐겁다. TV에 나오는 신모 아자씨는 쉽게 말한다. ‘프로축구가 팬들을 매료시키기 위해서는 승부에 집착하기 보다는 재미있는 축구, 공격적인 축구를 해야 한다’

맞는 말이다. 재미있고 공격적인 축구가 좋긴 좋다. 하지만, 이 말을 우리의 국가 대표팀에 옮겨 보자. 또는 내가 국가대표팀 이상으로 좋아하는 프로팀으로 옮겨 보자. 여러분이나 나나 자신의 팀이 이기기를 원할 것이다. 물론 재미있는 경기, 공격적인 경기를 통해서 화끈하게 이기기를 원할 것이다. 하지만, 팬들을 위해 승부에 집착하지 말라는 말은 TV 해설자들이나 할 수 있는 이야기다. 홈 팬들의 잔뜩 부라린 눈 앞에서 승부에 집착하지 않을 감독이 있을까? 반대로 홈 구장에서 승부에 이기기 보다 퍼포먼스에 더 치중하는 패자를 용납할 팬들이 있을까? 홈에서 2연패만 해도 관중이 줄기 시작하며 팬들이 아우성이 거세지는 것이 현실이다. 즉, 현실적인 골수 축구 팬들을 생각한다면 오히려 ‘팬들을 위해 치열하게 승부에 집착하라’는 주문이 더 어울릴 것이다.

이것은 아이러니다. 팬들은 골이 많이 들어가는 경기, 승부 보다는 재미와 박진감이 넘치는 경기를 원하지만… 실제로 자신이 축구의 세계에 빠져 든 후에는 가장 승부에 집착하고 근성과 투혼, 끈기를 발휘하는 팀이 가장 재미있고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연출한다. 그래서, 라이벌간의 치열한 무승부가 더 피를 말리는 것이며, 여기서 딱 한 골만 터져 준다면 멋지게 승패가 갈리는 것이다.

골이 많이 터지면 더 좋겠지만, 사실 1대0이면 족하다. 그거면 충분히 승리의 기쁨과 멋진 경기를 즐길 수 있다. 여러분들도 1대0 승부의 묘미를 맛본 적이 있을 것이다. 우리를 가장 쉽게 흥분시키는 한일전만 보아도 짜릿했던 1대0 경기의 기억을 쉽게 꺼낼 수 있을 것이다. 어디 그 경기가 골이 터지지 않아서 지루하던가? 오히려 터질 듯 터질 듯 하면서 사람의 마음을 몰아 세우다가 어느 한 순간 탁 터지는 쾌감은 두 골, 세 골의 위력과 같은 것이었다. 결국 자신이 경기에 몰입할 수 있으며 양팀 중 하나가 나와 동일시 될 수만 있다면 경기의 재미는 완전히 달라진다. 골이 터지지 않아서 지루한 것이 아니라… 한 방에 카타르시스를 느끼기 위한 박진감 넘치는 목마름이다.

골이 적게 터져서 축구가 재미 없다는 문제는 축구 경기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다. 승패를 가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양 팀의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은 자기 자신의 문제가 가장 크다. 11대 11의 공놀이, 골 넣기 게임을 보는 입장에서는 멋진 골 많이 터지는 경기가 좋은 경기고, 무찔러야 할 나의 상대팀과 일전을 벌이는 사람에게는 승리가 곧 가장 큰 기쁨이 된다. (물론 비겁하고 추잡하게 이겨서는 안되겠지만!)

축구가 재미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

골이 많이 터지지 않아서 재미 없다는 사람들.

모든 팀들이 너무 승부에 집착해서 꼴보기 싫은 사람들.

유럽이나 남미처럼 세련되고 박진감 넘치지 않아서 별로 볼 맛이 나지 않는 사람들.

히바우두 같은 놈도 없는 판에 정환이도 가고 동국이도 가고… 볼 게 없다는 사람들.

한국 축구는 뻥 축구에 태권 축구만 구사하기 때문에 꼴 보기 싫은 사람들…

아마도 이런 사람들이 스스로 축구장을 찾을 만큼 프로축구가 성장하려면, 우리가 미친 듯이 준비를 한다고 해도 십여년은 족히 걸릴 것이다. (어쩌면… 그 보다 훨씬 더 걸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사람들이 당장 자신이 좋아하는 프로 팀을 가지게 된다면 불만의 대부분은 사라질 것이다.

아주 간단하다. 올 시즌에는 대표팀 이상으로 좋아할만한 팀을 하나 가져보는 것이다. 투박하고 촌스런 K-리그 팀의 팬으로 살아간다는 것… 그것이 바로 풀뿌리 한국 프로축구가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리그 보다 더 재미있게 다가올 수 있는 열쇠이다.

자료제공 : 후추닷컴(http://www.hooc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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