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인터뷰]이상은, 음악으로 세상을 뒤집고 싶다

  • 입력 2001년 2월 9일 16시 16분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 그렇게 이제 뒤돌아 보니 젊음도 사랑도 소중했구나. 언젠가는 우리 다시 만나리. 어디로 가는지 아무도 모르지만… 헤어진 모습 이대로."('언젠가는' 중에서)

'방랑 뮤지션'으로 불리는 이상은을 만나러 가는 차안에서 그의 노래 '언젠가는'을 흥얼거렸다. 88년 <강변가요제>에서 펄쩍펄쩍 뛰듯이 춤을 추며 '담다디'를 불렀던 그였다. 그리고 12년의 세월이 흘러 이상은은 동양과 서구의 멜로디를 아우르는 아티스트로 변신했다.

그가 10번째 정규 앨범 '끝없는 시(詩)'(Endless Lay)를 들고 2년만에 한국에 돌아왔다. 영국 첼시 칼리지에서 회화를 전공하고 있는 관계로 1주일간의 짧은 고국 방문이었다. 8일 오후 7시 서울 신사동 EMI 사무실에서 만난 이상은은 다소 피곤해 보였지만 크고 맑은 눈인사를 던지며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 음반 제목이 '끊임없는 시'인데 어떤 의미를 갖고 있나?

- 이번 앨범 첫곡을 따온 것뿐 특별한 의미는 없다. 현실이 힘들고 괴롭지만 서정시처럼 살자고 말하고 싶었다.

▼ 10집은 동양적이면서 서구적인 느낌이 드는데 새 음악을 소개한다면?

- 중국 민속 악기인 '공후'를 사용했고 테크노, 포크 등 다양한 음원들을 내 음악으로 수용했다. 특정한 장르를 정해놓고 음악을 만들진 않는다. 그동안 나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던 한 대수, 한영애, '들국화'의 음악과 외국에서 즐겨 들었던 노래가 혼합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이번 앨범에 수록된 '오늘 하루'를 보면 "잊어 버리는데 몇 년이 걸리고, 아무는데 몇 달이 걸리고. 사람은 참 연약하구나. 기억이 가물거리네"라는 내용이 나온다. 노랫말을 쓰는데 자신의 경험을 많이 담는 편인지.

- 물론 내 경험도 있지만 우리네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생각한 것이다. 여기서 밀리고 저기서 무시당하는 현대인은 불쌍하다. 개개인이 외로울 때 고독할 때 어울리는 음악이라고나 할까.

♬ 노래듣기

  - Endless
  - 오늘 하루
  -

▼ 영국에서 미술 공부를 하고 있는데 음악과 어떤 관련이 있나?

- 누군가 '예술은 어떤 장르든 같은 얘기를 하는 것"이라고 말한 것에 공감한다. 음악이나 미술이나 표현 방식의 차이일 뿐 다른 게 없다. 1년 과정으로 미술을 배우고 있는데 전시회 같은 것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채우는 과정이다. 자유 분방하게 한 자리에 앉아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보면 선생들이 돌아다니며 여러 가지를 알려 준다. 유럽의 자유로운 교육 방식은 우리가 본받을 부분이라 생각한다.

▼ 영국 학창 생활은 어떤가?

- 한마디로 '전쟁'이었다. 처음에 영국 학생들은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영국 사람들은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국가 사람들을 미개인처럼 생각했다. 수업을 들으러 갔을 때 내 자리를 말없이 뺐기는 등 열 받는 상황이 계속됐다. 하지만 계속 버텼고 이제 영국 사회로 조금씩 들어가고 있다.

▼ 데뷔한 지 12년이 됐다. 시작할 당시와 지금의 차이는?

- 처음 데뷔했을 때는 곡을 만들어 주는 대로 노래했다. 완성도가 떨어지는 것은 당연했고 애착도 없다. 3집부터가 이상은의 진짜 음악인 셈이다. '공무도하가' 때 음악은 '종교'처럼 절대적인 것이었지만 이제는 나와 청자(Listener)가 교류하는 창구라고 본다.

▼ 이상은 씨는 외국에서 아티스트로 호평을 받고 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 무국적의 음악 그리고 문화적인 차이를 넘어선 음악이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에서는 나를 고집 세고 이상한 아이로 본다. 일본 도시바 EMI로부터 아티스트 육성비를 받고 있으니 인정을 받긴 받았나 보다.(웃음)

▼ 요즘 어떤 음악을 주로 듣나?

- '콜드 플레이' '버브''일브레이' 등 영국 모던 록을 즐겨 듣는다. 록은 아직 나에게 생소한 분야지만 여러 가지를 습득하려고 노력중이다. 한국 음악의 경우 '황신혜 밴드', '어어부 프로젝트' 정도다.

▼ 지난해 영화 <봉자>의 음악을 맡는 등 영화 음악에 대한 관심이 많아 보인다.

- 물론이다. 감독의 스태프로 참여하는 것뿐이지만 좋은 영화라면 자주 참여하고 싶다.

▼ 결혼을 하고 싶다고 밝힌 것으로 안다.

- 그냥 짝을 찾고 싶다. 어딘가에 분명히 있을 텐데…. 리차드 에시크로프트(사진을 보여주며)라는 뮤지션이 내 이상형이다. 나와 잘 어울릴 것 같은 남자 아닌가?(웃음)

▼ 앞으로의 활동 계획은?

- 3월에 일본에서 10집 음반이 발매되면 프로모션 활동을 할 것이고 4월5~8일까지 서울 대학로 폴리미디어 씨어터에서 4회 공연을 갖는다.

▼ 한국에서 활동하지 않는 이유가 궁금하다.

- 언젠가는 돌아오겠지만 지금은 보헤미안처럼 돌아다니는 게 좋다. 국내 활동? 한 달만 해도 질릴 것 같다. 싫어서가 아니라 아직은 배울게 더 있기 때문이다. 내공을 많이 쌓은 뒤 국내 가요계에 돌아오겠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 음악에 대한 생각을 바꾸지 않으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음악을 듣고, 풍류를 즐기던 조상들처럼 우리 본래 모습을 되찾았으면 좋겠다.

이상은 10집에는 한국어 노래가 3곡뿐 나머지는 모두 영어로 돼있다. 이번 음반을 통해 그는 월드 뮤지션으로 한걸음 더 나가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인터뷰를 마치며 기자는 이상은이 음악과 인생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하고 있는 뮤지션임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황태훈 <동아닷컴 기자>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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