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문화]'개인기 열풍' 뒤끝엔…

  • 입력 2001년 2월 4일 18시 49분


요즘 TV 방송을 보면 ‘개인기 대결’이 넘쳐난다.

그러나 축구 농구 배구 등 스포츠 게임에서 선수들이 화려한 동작으로 팬들을 사로잡는 그런 고전적인 의미의 개인기가 아니다. 이제는 연예 오락 프로그램에 손님으로 출연한 가수나 탤런트 개그맨들이 개인기 경연의 주인공들이다.

노래가 본업인 가수들이 유명인을 흉내내는 성대모사를 하거나 연기를 해야 하는 탤런트들이 황당한 경험담 등 우스갯소리로 방청객과 시청자를 웃기는 식이다. 토크쇼에서 시작된 연예인들의 개인기 대결이 이제는 웬만한 오락프로에는 고정코너로 자리잡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개인기가 없는 연예인은 TV에 출연할 기회가 그만큼 줄어들게 됐다. 최근에는 가수가 노래 연습이 아니라 성대모사 등 확실한 개인기를 만드는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는 얘기까지 방송가에 돌고 있다. 심지어 신인 연예인들은 연예프로 제작진과 사전 연습을 통해 개인기를 연마한 뒤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도 한다. 이런 개인기 덕분에 뜬 가수나 탤런트도 있다.

TV 방송의 영향으로 개인기 대결은 이미 직장 등 일반 사회에도 널리 퍼졌다. 지난해 ‘엽기’라는 단어가 우리의 문화현상을 지배했었다면 이제는 개인기 열풍이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한 형국이다.

노래방이 처음 생겼을 때만해도 노래를 돌려부르는 수준에 그쳤던 회식풍속도 이제는 다양한 개인기를 자랑하는 식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직장인 술자리에서는 다양한 폭탄주 제조나 연예인 흉내내기는 기본이고 콧구멍에 동전 밀어넣기 등 엽기적인 개인기들이 선보이고 있다.

회식 자리에서 화려한 개인기로 분위기를 주도하는 사람이 업무능력과는 관계없이 윗사람의 총애를 받기도 한다. 그래서 좌중의 시선을 사로잡을만한 개인기가 없는 직장인들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술자리가 오히려 스트레스를 가중시킨다고 고충을 토로한다.

건전한 여가문화는 업무에서는 오는 긴장을 풀고 삶의 질을 높이는데 꼭 필요한 요소 중 하나다. 따라서 TV 방송은 연예인의 개인기 쇼로 시청자들의 눈길을 끄는 식으로 놀이문화를 왜곡할 것이 아니라 연예인들이 본업에 충실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하지 않을까.

<김차수기자>kimc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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