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우 엄마의 와우! 유럽체험]함부르크의 새벽시장

  • 입력 2001년 1월 19일 17시 50분


새벽부터 수백명의 인파가 줄을 지어 시장으로 행군하는 진풍경. 독일의 항구도시 함부르크의 일요일 새벽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우리나라를 찾은 외국관광객이 제일의 명소로 꼽은 곳이 경동시장이라면, 아마 독일을 찾는 외국인들도 함부르크의 새벽 수산시장을 최고로 꼽을 겁니다.

전철역에서 인파를 따라 항구 쪽으로 십분 정도 걸으면, 옷, 장난감, 신발, 보석, 음반 등을 파는 잡화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눈 여겨 볼만한 것은, 함부르크 선원들의 소품. 흰색 모자나 세일러복을 사는 사람들이 많은데, 같은 디자인의 아동복을 사서 아이와 나란히 입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더군요. 항구 도시에 왔으니 다양한 배 모형을 이용한 기념품도 선물용으로도 좋겠지요. 가격도 파격적이지만 기왕 시장에 왔으니 배포 좋게 흥정을 해보는 것도 즐겁습니다.

양쪽으로 늘어선 먹거리 코너에서는 아침식사가 한창이군요. 소시지, 따뜻한 와인, 간단한 수프 등등. 아인토프라는 수프는 각종 야채와 소시지를 넣어 끓인 것으로 빵을 찍어 먹어도 맛이 그만이에요. 전쟁 중에 영양섭취를 위해 개발된 수프로, 이런 추운 겨울날 든든한 한끼 식사로 안성맞춤이지요.

생선시장답게 해물을 이용한 샌드위치도 많습니다. 날 청어를 빵 사이에 끼운 샌드위치는 보기만 해도 등에 소름이 돋는데 의외로 불티나게 팔려나가고 있네요. 실험정신에 불타는 나우엄마도 도전했으나, 결국 청어 몸통 중간에서 포기...나우도 먹기 싫다고 울며 저항하는 바람에 지나가던 강아지에게 기부했습니다.

시장 안쪽으로 더 들어가서 다리를 건너면 항구에 정박한 배들이 보입니다. 이곳이 바로 진짜 수산시장이에요. 독일에서 제일 싱싱한 해물을 살 수 있는 곳이죠. 배에서 잡은 해물을 배불뚝이 선원 아저씨들이 그 자리에서 칼자루를 휘두르며 박력 있게 손질해 줍니다. 맥주를 마시며, 우렁찬 목소리로 손님들을 끌어 모으는 뱃사람들의 구수한 입담에 행인들이 웃음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한 소쿠리씩 인심 좋게 생선, 조개, 새우 등을 가득 담아 파는데, 펄떡이는 생선이 어찌나 먹음직스러운지. 초고추장이 눈에 삼삼... 집만 가까우면 오늘 저녁 시원하게 섞어찌개를 끓일 수 있으련만... 해물봉지 들고 유모차 끌고, 기차 여행할 자신이 없어 포기했습니다.

사람들이 삼삼오오 몰려가는 낡은 창고건물. 이곳에 바로 함부르크 수산시장의 하이라이트가 기다리고 있더군요. 창고건물에서 열린 팝 콘서트. 천명은 족히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 몸을 흔들며 와인을 홀짝이고 있습니다.

감미로운 멜로디와 와글거리는 인파 사이로 뿌연 담배연기가 가득한 낡은 창고의 풍경은, 일요일 아침 10시라고는 믿을 수 없는 진풍경이었지요. 곳곳에서 지글지글 해물을 볶고, 수프를 끓이고, 흥이 오르면 다른 사람 시선과 관계없이 춤을 즐기는 자유로운 모습. 가족과 함께 온 사람이나, 연인과 온 사람이나, 혼자 샴페인을 즐기러 온 사람이나 평화롭게 공존하는 곳이기에 더욱 마음을 따뜻하게 하더군요. 절제와 중후함의 미덕을 중시하는 독일에서 가장 독일답지 않은 도시. 바다를 향해 열린 항구도시 함부르크이기에 체험할 수 있는 경쾌함이었겠지요.

시장에서 돌아오는 길은 마침 시장의 파장시간과 물려, 떨이가 한창이었습니다. 파인애플, 바나나, 사과, 귤, 수박이 가득 담긴 쌀자루 만한 과일자루가 단돈 오천원. 피망 한 상자가 이천원. 팔뚝만한 호박 스무개 천원.

싼 맛에 이것저것 사고 보니 양손에 꾸러미가 주렁주렁. 짐도 줄일 겸, 점심으로 과일을 먹고, 간식으로 과일 먹고, 저녁으로 기차에서 또 과일 먹고...대단한 과일의 날을 보냈지요.

그날 함부르크에서 산 호박과 과일을 다 먹는데 꼬박 3주가 걸렸답니다. 특히 호박은 나우 아빠 팔뚝만한 대단한 선수들이었거든요. 매일 호박나물, 호박전, 호박찌게 등을 번갈아 해먹으며 호박에서 해방된 날. 정작 냉장고를 비우고 나니 그렇게 싱싱하고 건강한 야채를 더 이상 구할 수 없어 눈에 밟히더군요.

제수용품 준비에 우리네 시장도 부쩍 분주해졌습니다. 흥정하는 목소리가 떠들썩하고, 커피 아줌마의 보온병 커피가 이불같이 따뜻한 우리 장터. 꺼칠한 야채 할머니의 손을 바라보며, 내 노년을 생각하게 되는 곳. 후루루 따스한 국밥 한 그릇에 온갖 시름이 잊혀지는 우리 장터.

겉모양은 달라도 장터의 속살은 같아 보입니다. 인생에서 배워야 할 것을 시장에서 배우게 된다는 점에서...

나우엄마(nowya2000@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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