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뜨겁다]'의원 꿔주기' 쇼크

  • 입력 2000년 12월 31일 19시 19분


‘자민련 교섭단체 만들어주기’를 위한 의원 3명의 당적변경 사태는 결과적으로 개개인이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을 마치 ‘물건’처럼 정당간에 서로 주고받은 모습이 됐다. 유례가 없는 이같은 ‘의원 빌려주기’는 정당과 의회의 존립 근거를 위협하는 또 하나의 헌정왜곡 사례로 기록될 것이란 인식이 지배적이다.

우선 무르익어 가던 여야 화합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어 새해 벽두부터 정국 경색이 불가피하게 됐다. 당적변경 의원 3명은 여소야대(與小野大)의 정치가 더 이상 경제회생의 발목을 잡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결단’을 내렸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 결과는 오히려 반대일 것이라는 전망이 더 많다.

여권은 △1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국정개혁안 발표 △2월 금융구조조정 등 4개 개혁 마무리 △3월 개각까지 마치면 내년 하반기부터는 경제가 회복될 것이라고 새해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여야대립으로 정국불안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여권의 이같은 청사진이 실현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가 지난해 12월29일 “새해에는 경제회생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정부 여당에 흔쾌히 협력할 것”이라고 밝힌 그 순간 김중권(金中權)대표체제의 민주당은 의원 3명을 자민련에 ‘의거(義擧)입당’시키는 변칙적 정계개편을 진행시키고 있었다는 점에서 한나라당의 거센 반발과 반격이 예상된다.

뿐만 아니라 이번 사태는 김대통령을 비롯한 여권의 도덕성에도 심대한 타격을 줄 것으로 보인다. 김대통령이 국정개혁의 첫 카드로 던진 민주당 김중권대표체제의 ‘첫 작품’이 바로 이번 사태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도덕성 실추는 국정개혁과 경제회생에 대한 추진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정치권에서는 김대통령이 결국 ‘힘의 정치’를 선택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무성하다. 자민련을 교섭단체로 만들어 김종필(金鍾泌)명예총재와의 공조를 완전 복원한 뒤, 커진 힘을 바탕으로 본격적인 정계개편에 나서려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DJ의 궁극적인 목표는 ‘제2차 DJP공동정권 창출’이라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JP도 내부적으로 이들 3인의 자민련 입당을 확인한 직후 “겉으로든 속으로든 나하고 (사이가) 나쁜 사람은 다음 대통령이 될 수 없을 것”이라고 공언했었다는 후문이다.

그런 기류를 읽고 있었을까. 한나라당 주진우(朱鎭旴)총재비서실장은 지난해 12월31일 아침까지도 총재의 반응에 대해 “일절 말씀이 없다. 태풍 전야의 고요상태”라고만 전했었다. 이번 사태를 ‘기만극’으로 규정하는 이총재의 신년사가 나온 것은 그 뒤였다.

<김창혁기자>c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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