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충식]목에 감는 쇠고리

  • 입력 2000년 12월 29일 18시 47분


카렌족은 여자아이의 목에 쇠고리를 감아 키운다. 목이 긴 처녀라야 시집갈 때 잘 팔리기 때문이다. 다섯살 무렵부터 쇠고리를 감기 시작하면 스무 살쯤이면 수십바퀴가 넘는다. 사슴처럼 늘여 뺀 목, 친친 감긴 쇠고리, 문명 사회의 눈으로 보면 기막힌 가학(加虐)이요, 섬뜩한 야만 풍습이다.

미얀마 남부에서 태국 국경에 걸쳐 사는 이 카렌족의 생태가 엊그제 KBS 9시뉴스에도 소개되었다. 목에 감는 쇠고리는 숨막히는 고통을 안겨줄 것이다. 먹고 일하고 잠자는 데 얼마나 불편할 것인가. 그러나 정작 그녀들의 표정은 행복하다. 손가락 굵기의 철사를 목에 동여매고도 고통은커녕 즐거운 축복의 표정이다. 안쓰럽다는 국외자의 동정(同情)이 되레 이상하다는 듯 쳐다본다.

▼대한민국의 쇠고리 '지역감정'▼

카렌족만의 ‘긴 목이라야 아름답다’는 전통 인습이 이처럼 바깥 세계의 눈에는 끔찍한 반(反)문명일 수 있다. 한 세계의 안쪽에서, 그리고 바깥쪽에서 쳐다보는 인식의 차이는 이렇게 크다. 서울에 주재하는 수많은 서방외교관들이 한국 사람들의 지역감정, 이제 사무친 인습 전통이 되고 만 지역갈등을 쳐다보는 시각도 카렌족의 목을 감는 쇠고리 같은 것이다.

서울에 있는 주요국대사관의 2인자를 지낸 서방 외교관 C씨도 비슷한 관찰과 소회를 내게 말한 적이 있다. 한국이라는 우물안이 아니라, 세계의 눈으로 보기에 한국의 지역갈등이란 그야말로 이해하기 어렵고 때로는 애처로우며, 백해무익한 자손(自損) 자상(自傷)행위라는 것이다.

‘한국인들은 스스로 반만년 유구한 역사의 단일 민족을 자랑한다. 같은 말과 글, 같은 피부색에 같은 문화 전통 인습을 지닌 채 살아간다. 그런데도 영남 호남이라 해서 지역간에 철천지원수처럼 나뉘어 이를 간다. 너무 비좁은 국토 안에, 사람들이 너무 꼭 닮아서 조금이라도 다른 것, 지연 혈연 학연을 쪼개고 갈라 가며 싸우는 것인가? 미국인끼리는 너무 다른 게 많아서, 피부색 인종 문화 언어 출신지가 너무 달라서 하나의 성조기 아래 지역감정 없이 뭉치는 것 아닐까?’ 그것이 C씨의 가설이다.

이 나라의 지역 가르기는 상대지역에 대한 가학을 넘어 범죄적으로 발전한다. 김영삼대통령 시절 호남에는 터무니없는 말들이 떠돌아다녔다. 예를 들면 멸치값이 오르는 것은 YS의 아버지가 다 잡아가는 바람에 그렇다는 것이다. 어느 누가 무슨 의도로 퍼뜨리기 시작한 것인지 몰라도 삽시간에 지역광풍을 타고 번진다. 호남사람들은 이 믿어지지 않는 우스개를 되풀이하며 영남과 YS정권에 대한 반감을 불사르고 똘똘 뭉쳤다.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한 98년 여름에는 폭우가 심했다. 영남에서는 ‘김대중이가 대통령이 되니 비도 대중없이 온다’고 했다. 말이 안되면서도, 한편으로는 말이 되어 퍼지는 이상한 메커니즘으로 반DJ 정서는 번지는 것이다. 경상도 공장을 뜯어다 호남에 짓는다거나, 노벨상을 타기 위해 심사위원에게 돈을 뿌렸다는 인터넷상의 욕설도 마찬가지다.

지금 한나라당 소속인 한 의원은 87년 총선때 대구에서 출마했다가 떨어졌다. 낙선이유가 여러 가지였지만 ‘목포 출신이라 성이 목씨’라는 말이 퍼진 것도 한 이유라고 불평하곤 했다. 목(睦)씨 성과 나무목(木)자를 모를 유권자가 어디 있을까마는, 선거판 현실은 그런 엉뚱한 소리도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이젠 부끄럽지도 않을 지경▼

지역감정의 쇠고리는 ‘동네안’ ‘끼리’를 ‘속딱’한 쾌감과 일체감으로 친친 감아 묶는다. 그리고 넓지도 않은 이 나라에서 상대지역에 대한 배타심과 적개심을 불사른다. 그런 감정에 취하면 대한민국의 목을 옥죄는 서로 서로의 ‘쇠고리’가 부끄럽지도 않다. 다른 나라 사람이 보기에는 참으로 원시적이고, 반문명적인 이런 감정이 정치와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스며들어 작용한다. 세계에 손꼽히는 교역국가 대한민국의 역설이다.

카렌족 여인들의 목은 쇠고리 때문에 길어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목을 잡아 뺀다고 얼마나 늘일 것인가. KBS 이준삼기자는 여인들을 찍은 엑스레이 필름을 내보이며 보도한다. ‘그녀들의 목이 늘어난 게 아니라 기실 어깨뼈가 내려앉은 것으로 확인되었다’고. 대한민국의 어깨뼈는 아직 괜찮은 것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김충식<논설위원>seesche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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