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요리 맛있는 수다]미워도 다시 한번 북어국을 끓이네...

  • 입력 2000년 12월 11일 16시 11분


벌써 망년회 계절이 돌아온 건지 남편의 귀가 시간이 엿가락처럼 늘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주엔 사흘 연속 곤드레 만드레로 들어와서는 곤히 자는 저를 깨우더니 아침엔 속이 아프다고 징징거리는 겁니다.

"그러게 누가 술을 그렇게 퍼마시래?" 하며 본척만척 했더니 자기가 술 마시는 이유는 다 저를 먹여살리기 위해서랍니다. 핫, 기가 막혀서...고등학교 동문회랑 절 먹여살리는 거랑 무슨 상관이랍니까? 게다가 제가 먹으면 또 얼마나 먹는다구...

어쨌든 속이 쓰리긴 쓰린지 북어국 타령을 해대길래 결국 북어국을 만들어줬습니다. 북어포를 물에 불리고 양파랑 파를 썰다보니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도대체 한국 남자들의 이 이유없는 당당함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하고요.

결혼하기 전에 전 암만 술에 쩔어 들어와도 다음날 엄마한테 북어국 끓여달란 말, 꺼내지도 못했습니다. 맞아 죽지 않는 것만도 다행이지요. 겨우 엄마 몰래 라면을 끓여 먹는다던가, 회사 근처 북어국집, 콩나물국밥집을 전전하며 '알아서' 해장을 하곤 했지요. 그런데 친구들 얘길 들어봐도 한국 남자들은 전날 뭔 짓을 하고 들어왔는지는 아내에게 절대! 알리지 않으면서 북어국과 콩나물국은 당당하게 요구하는 모양이더라구요. 뭐, 다들 그러겠죠. "나, 가족을 위해 마셨노라!..."고.

북어국이 왜 속풀이국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쓰린 속을 부드럽게 달래주는 데는 탁월한 효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뭔가 과학적인 해독작용을 한다고 어딘가에서 읽은 기억이 나는데...아마도 조상 대대로 술 먹은 다음날 이것도 먹어보고 저것도 먹어보았지만 북어국만한 게 없었다...그리하여 북어국이 대표적인 해장국이 된 거겠죠.

어떻게 보면 북어국은 여자들에게도 속풀이가 됐을 것 같아요. 전 그냥 북어포나 잘게 찢어놓은 북어를 사서 국을 끓이는데 원래는 통북어로 끓여야 제맛이라고 하더라구요. 그 옛날 아줌마들, 통북어를 냅다 두들기면서 이러지 않았을까요? "어디 두고보자...늙어서 보자..."

전 북어국을 끓일 때 편편한 북어포를 주로 이용합니다. 통북어는 생긴 것만 봐도 너무 거한데다가 두들겨줄만한 도구도 없어서요...북어포를 물에 담가두면 빼빼말랐던 살들이 통통하게 올라와서 국을 끓이면 씹는 맛이 있구요, 잘게 찢어놓은 것은 편리하긴 한데 씹는 맛은 별로 없더라구요. 이 북어살들을 참기름에 달달 볶다가 물을 붓고 끓이면 참기름 냄새가 고소하고 국물맛은 시원한 북어국이 됩니다. 냉장고를 뒤져 대파랑 양파랑 감자나 버섯을 넣어도 맛있구요. 마지막에 계란 하나 톡 깨서 후루룩 부어주면 끝! 이것도 복잡하다고 한다면 정말 주부자격 없지요.

저희 남편은 북어국에 밥 한그릇을 뚝딱 먹어치우더니 늘어지게 낮잠을 잡니다. '정말 속이 아프긴 아팠었나?' 싶게 잘 먹더군요. 날 먹여살리느라 그렇게 술을 퍼마셨다니 할 말은 없지만 정말 궁금하네요. 남편의 건강을 생각해서 때려주고 싶게 미운 걸 겨우 참고 북어국을 끓여주는 이 아내의 깊은 뜻을 알기나 하는지요...

***남편과 아내의 속풀이용 북어국 만드는 법***

재 료 : 북어포, 대파, 양파 1/2개, 달걀 1개, 참기름, 국간장, 조미료 약간

만들기 : 1.북어포를 물에 불린다

2.양파와 대파를 채썬다

3.참기름을 둘러 뜨겁게 달군 냄비에 북어를 넣고 볶는다

4.물을 붓고 끓이다가 뽀얀 국물이 우러나면 양파와 파를 넣고 끓인다

5.조미료를 약간 넣고 국간장, 소금으로 간한다

6.달걀을 플어서 흘려넣고 후춧가루를 뿌린다

ps. 술 먹은 다음날, 해장을 '피자'로 하자는 아저씨가 있었습니다. '어? 술먹고 피자먹으면 정말 어떻게 될까?'하는 호기심에 쭐레쭐레 따라가서 피자를 한판 먹어치웠죠...그날 오후, 저 조퇴했습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무얼 먹고 해장을 할까? ...아마도 피자는 아닐 것 같습니다.

조수영<동아닷컴 객원기자> sudatv@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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