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쟁점토론]기초단체장 임명직 전환

  • 입력 2000년 12월 1일 18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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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국회의원 42명이 지난달 29일 국회에 현재 선출직인 시장 군수 구청장 등 기초단체장을 임명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며 지방자치제법 개정안을 제출한 데 대해 전국의 기초단체장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의원들은 자치제 실시 이후 무분별한 지역개발과 단체장의 인사권 남용 등 문제가 많았다며 기초단체장을 정부가 임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기초단체장들은 단체장 임명직 전환은 민주주의 발전에 역행하는 시대착오적 발상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찬성/선심-전시행정 폐해 위험수위▼

지방자치제도 실시로 풀뿌리 민주주의 정착과 행정서비스 개선 등 여러 결실을 거두었다. 그러나 선출직 자치단체장들의 각종 문제점이 드러나면서 지방자치제도의 근본이 흔들리는 폐단도 생겨났다.

우선, 자치단체장들이 지역경제 발전은 외면한 채 선거만 의식해 불요불급한 선심성, 전시성 사업을 남발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가지 예로 전국 232개 지방자치단체가 지난 1년 반 동안 벌인 각종 축제가 600여건으로 지자체 당 평균 3건 꼴이다. 체육대회 등 지자체의 각종 행사예산이 민선 단체장 출범 이후 10배 이상 늘었다는 감사원 감사결과도 있다.

이는 방만한 재정운영으로 이어져 지자체 재정난이 심각한 수준으로 떨어지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전체 지자체 중 62%가 자체 세수로는 인건비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지자체들의 채권발행 규모는 94년 말 10조3154억원에서 99년 말 18조190억원으로 75%나 늘어났다. 연간 이자 부담만도 1조원을 넘어 빚 얻어 빚을 갚는 사태에 직면해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단체장들은 돈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다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고양시의 러브호텔 난립과 용인시의 마구잡이식 아파트 건립 등 각종 건축허가 남발과 난개발은 파행적인 재정수입 늘리기에 내몰린 지자체가 직면하게 된 파국적 귀결이라고 할만하다.

더욱 심각한 것은 차기 선거 준비로 인한 행정공백과 인사권의 전횡으로 지방공무원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단체장들은 본연의 업무는 제쳐놓고 상가집이나 결혼식장 방문 등 선거구 관리에 많은 시간을 할애함으로써 업무공백을 차초하고 있다. 공무원 인사에서도 능력이나 서열보다는 선거 관련 인사나 측근 등 '내 사람 챙기기' 식 인사가 만연해 있을 뿐만 아니라 지방공무원의 선거동원이나 줄서기 강요도 위험수위를 넘어섰다.

이밖에도 아무런 제동장치 없이 벌어지고 있는 기초자치단체장 사이의 지역이기주의와 제왕적 자세 때문에 광역단체장이 종합행정을 제대로 펼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 이런 문제점들은 시행착오로 치부하기에는 너무 심각한 수준이며 현실적으로 이를 규제할 징계수단도 없는 실정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선출직 기초단체장인 시장 군수 구청장을 광역단체장이 임명하는 임명직 기초단체장으로 바꿔야 한다. 그것이 혼돈에 빠져 있는 지방자치제를 살리는 길이며 국가를 살리는 길이다.

기초단체장의 임명직 전환이 민주주의에 역행하고 지방자치를 포기하는 것이라는 반론은 기우에 불과하다. 주민에 의해 선출된 광역 자치단체장이 행정경험과 능력을 갖춘 전문행정인을 임명함으로써 보다 종합적이고 효율적인 지방자치를 구현할 수 있으며, 기초의회 의원이 단체장에 대한 견제기능과 주민의견 수렴기능을 통해 지역주민의 의견을 자치행정에 충분히 반영할 수 있으므로 민주주의가 보다 활성화될 수 있다고 본다.

임인배(국회의원·한나라당)

▼반대/지자체 본질 부정 비민주적 발상▼

지방자치제가 부활돼 민선시대를 연지 5년이 지나면서 다양한 평가와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여야 의원들은 기초단체장 선거제를 폐지하고 임명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내용의 지방자치법 개정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한 이유로, 자치제 실시 이후 무분별한 지역개발과 전시성 사업 남발, 방만한 재정운영, 단체장의 직무태만과 인사권 남용을 들고 있다.

이것이 현실에 대한 적절한 분석이며 진단인가 하는 문제는 차치하고 우선 단체장을 임명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 민주주의 발전에 역행하는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지방자치는 과거 권위주의적 중앙집권 체제의 폐단을 타파하고 주민에게 권리를 되돌려 주기 위해 오랜 투쟁과 산고 끝에 탄생시킨 분권 민주주의이다. 그런데 제도 실시 5년만에 자치제 실시로 인한 부정적 요소만 부각해 임명제 단체장 시절로 돌아간다면 이는 지방자치를 부정하는 것임은 물론이고 결국 민주주의의 후퇴를 가져오게 될 것이라는 사실은 너무나 분명하다.

민주주의가 그렇듯이 지방자치제도 역시 완전한 제도가 아니며 따라서 긍정적인 면만 있을 수는 없다. 특히 우리 현실은 짧은 지방자치 역사와 자치 여건의 미흡 등으로 시행착오와 문제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꾸준한 제도정비와 여건 개선, 단체장을 비롯한 자치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의 지방자치에 대한 깊은 이해와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일부 시행착오를 해결한다는 명분으로 지방자치의 본질인 단체장 선거제를 부정하는 극약처방식 대응은 벼룩을 잡기 위해 초가삼간을 태우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더욱이 민주주의와 인권이 어느 때보다 강조되는 상황에서 이런 비민주적 발상이 어떻게 가능한지 모를 일이다. 지방자치를 실시하지 않는 선진국이나 인권국가가 지구상에 존재하는가?

지방자치 문제는 과거 자치제가 실시되지 않던 시대와의 비교 개념에서 인식되고 판단돼야 한다. 단체장 임명제가 안고 있던 권위주의 체제, 다시 말하면 주민보다 임명권자를 더 의식하며 일했던 시대, 그래서 비민주적이고 비효율적이었으며, 지역의 자율과 창의가 상실돼 국가의 총체적 경쟁력을 떨어뜨렸던 시대의 문제점을 굳이 들먹일 필요가 있을까?

특히 지방자치법 개정안이 국민에 의해 선택된 민주주의를 지키고 가꿔나가야 할 국회의원들에 의해 발의됐다는 사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 국회의 파행운행 등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부정적 평가가 어느 정도인지를 잘 알고 있을텐데, 그런 이유로 국회의원을 과거 유신체제하의 유정회 국회의원처럼 대통령이 임명하는 제도로 바꾸라고 한다면 국회는 이를 수용할 수 있겠는가?

결국 이번 지방자치법 개정 법률안은 과거 단체장 임명제 시절에 국회의원이 갖고 있었던 상대적 우월적 지위와 권위를 되찾으려는 이기주의에서 비롯됐다는 오해를 받기에 충분하다.

유정복(김포시장·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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