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랍 휴스 칼럼]히딩크에게 배워라

  • 입력 2000년 11월 30일 18시 27분


나는 한국축구가 그 네덜란드인을 얻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거스 히딩크 감독. 그는 검증된 지도자이며 더 중요한 것은 편견이 없는 지도자라는 점이다. 그는 아마 한국 풍습을 존중할 것이며 한국 선수들의 스피드와 기술적 능력을 높게 평가할 것이다. 그는 언어 장벽을 빠르게 극복할 것이다.

문제는 시간이다. 국제축구연맹(FIFA) 부회장으로서 FIFA의 업무와 관련한 각종 장벽을 극복해오고 있는 정몽준 대한축구협회장은 히딩크감독이 축구에 대한 아주 특별한 지능과 접근방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영국에서 열렸던 96년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96)에서 히딩크감독이 이끄는 네덜란드대표팀은 우승할 만한 충분한 능력이 있었다. 나는 선수들과 함께 훈련을 하는 히딩크감독을 지켜봤고 그와 맥주를 한잔 하기도 했다.

히딩크 이전 대표팀 감독이었던 딕 아드보카트는 너무 엄격했다. 돈, 전술, 자유시간, 혈통 등 모든 것에 대해 논쟁을 벌일 때 아드보카트는 선수들을 명령조로 대했다. 반면 히딩크는 훨씬 자유롭게 선수들을 대했다. 선수들이 자신들의 책임을 받아들이고 팀 화합을 위해 주기를 바랬다.

히딩크는 그가 지도했던 선수 중 몇몇 처럼 결코 천부적 재능을 타고 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는 팀을 조직화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PSV아인트호벤 감독 시절 그가 지도했던 로날드 쾨만과 에릭 게레츠로부터 배웠고 후에는 대니 브린드로부터 데니스 베르캄프, 데보어 형제, 그리고 에드가 다비즈, 파트리크 클루이베르트, 그리고 클라렌스 세도르프 등에게도 배울 것이 있으면 배웠다.

네덜란드를 거쳐 스페인의 발렌시와와 터키의 페네르바치팀을 지도한 ‘여행가’이자 ‘언어학자’로서의 히딩크를 보면 그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

유로96 때 네덜란드팀이 분열 조짐을 보인 것은 인종 문제였다. 다비즈와 세도르프는 탁월한 재능을 지닌 선수였으나 흑인이었다. 클루이베르트는 신세대 새별이었으나 승용차를 함부로 몰다 사망사고를 낸 후 또다시 살인사건에 연루된 철부지였다.

유로 96에서 네덜란드팀의 문제는 피부 색깔 만큼 나이에도 있었다. 대표팀 안에 파벌이 있었고 그것은 브린드와 그의 동료들은 세도르프가 주축을 이룬 떠오르는 새별들보다 훨씬 나이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마치 시한폭탄 처럼 째각거리다 결국 세도르프가 히딩크와 선배 선수에게 폭언을 퍼붓고 대표팀에서 쫓겨나면서 터지고 말았다.

놀라운 사실은 이런 문제가 발생하고도 히딩크가 감독직에서 물러나지 않은 것이다. 히딩크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네덜란드인들을 하나로 묶기로 결심을 했다. 그의 힘은 모든 사람을 직접 만나는 것에서 나왔다. 선수와 비평가들, 그리고 축구협회 관계자를 만나 그들에게 “같이 일을 하든지 아니면 가든지”라고 설득했다. 에드가 다비즈는 다시 대표팀에 복귀했고 98년 프랑스월드컵 4강전에 오르기 까지 네덜란드대표팀의 주축 미드필더로 활약했다.

히딩크는 98월드컵 이후 하나로 뭉친 대표팀을 레이카르트에게 넘겨 주었다. 레이카르트가 이끄는 네덜란드대표팀은 유로 2000에서 4강전에 진출했다.

나는 한국축구가 외국인 감독을 영입하는 일은 한번 해볼만한 ‘도박’이라고 생각한다.2002년 월드컵 개최까지 남은 18개월 동안 한국은 유망 선수들을 경험을 위해 해외로 보내는 일이 만만찮을 것이다. 그렇다면 차선책은 그의 가방속에 축구에 대한 해박한 경험과 지식, 이를 잘 전파할 능력을 간직한 채 올 수 있는 누군가를 데려오는 것이다.

한국축구는 자신의 고유한 문화를 지키면서 해외로부터 배워야 한다. 그렇지만 이것은 몇주 사이에 이뤄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영국인·축구칼럼리스트> robhu@compuserv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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