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하종대/옹졸한 '황장엽 관리'

  • 입력 2000년 11월 27일 18시 50분


“김정일 정권이 무너지지 않은 한 어떤 지원도 안된다는 황장엽(黃長燁)씨 주장은 현 시점에서 볼 때 좀 안맞는 것 아닌가요?”

“정부가 굳이 황씨의 입을 막으려는 이유를 모르겠어요.”

최근 정치권과 관가에서는 치열한 공방을 벌였지만 ‘황장엽 파동’을 보는 국민의 반응은 그와는 상당히 달랐다. 황씨가 북쪽에선 주체사상을 체계화한 ‘대학자’였을지 몰라도 취재과정에서 만난 시민들은 그의 극단적인 주장에 대부분 동조하지 않았다. 황씨와 같은 처지인 탈북자들조차 “지원은 하되 남쪽의 현실을 감안해 물량은 조절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수준이어서 황씨와는 조금씩 입장이 달랐다.

그런데도 정부가 황씨 파동에서 보여준 태도는 실망스럽고 안타까운 측면이 많았다. 황씨의 대외활동을 제약한 것이 사실이면서도 파장이 일자 변명을 늘어놓으며 부인하다가 나중엔 “안가에서 나가달라”고 야멸치게 반응한 것. 우여곡절 끝에 ‘특별관리’하기로 했다지만 정부기관의 자세치고는 치졸하다는 느낌이다.

이는 사소한 잘못이랄 수 있다. 보다 중요한 것은 분단 이후 최초의 정상회담 등으로 남북관계의 새 지평을 연 ‘햇볕정책’에 대한 자신감과 국민에 대한 신뢰감 결여다. 설령 황씨 주장에 동조하는 사람이 일부 있더라도 황씨의 입에 재갈까지 물릴 필요가 있겠느냐는 의견이 의외로 많았다.

자유민주주의의 가장 큰 장점은 서로 다른 생각일지라도 ‘사상의 자유공개시장’에 나오게 해서 국민으로 하여금 선택하게 하는 것이다. 이는 국민 스스로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다는 신뢰를 전제로 한다. 그런 신뢰조차 없이 어떻게 ‘국민의 정부’라고 말할 수 있을까.

또 ‘다른 생각’을 자유롭게 말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이번 파동과 같이 국가정책의 뼈대가 한 개인의 돌출행동에 휘둘리지 않게 할 뿐더러 남북화해정책이 보다 건강하게 성공으로 나아가는 지름길이 아닐까.

하종대<기획취재팀>orion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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