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강정훈/경남도의 실적 부풀리기

  • 입력 2000년 11월 26일 18시 34분


‘경남도 일본시장 개척단은 도쿄(東京) 르메르디언퍼시픽 호텔에서 현지 바이어 150여명과 가진 농수산물 수출 상담회에서 7160만달러의 수출계약을 체결했다.’

최근 경남도가 내놓은 보도자료의 내용이다.

시장 개척단은 김혁규(金爀珪)도지사를 단장으로 공무원 10여명과 도의원 2명, 업체 관계자 등으로 구성됐었다.

환율을 달러당 1100원으로 계산해도 780억원이 넘는 액수다. 그것도 한차례 상담회를 통해, 공산품이 아닌 농수산물 수출을 수천만달러어치나 어떻게 계약할 수 있었을까.

100만달러 이상을 계약했다는 업체 몇 곳에 확인을 해봤다.

A사 관계자는 “발표된 계약 체결액은 솔직히 행사 주최측의 요청에 의한 것이며 의미 없는 숫자”라고 설명했다. “그동안 계속 거래해오던 것으로 가격 변동이 없으면 별도의 계약서를 쓰지 않았던 것을 굳이 계약서를 다시 쓴 것”이라고 털어놓은 회사도 있었다.

10년 가까이 일본측과 거래하고 있다는 B사의 간부는 “해마다 12월∼이듬해 1월에 새해 수출물량을 결정하지만 이번에는 행사 때문에 앞당긴 것”이라고 말했다.

업체 관계자들은 경남도를 의식한 듯 “도지사가 바이어를 초청해 감사의 뜻을 표시하고 협조를 요청하면 여러 가지로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는 말을 덧붙였다. 맞는 얘기다.

하지만 이번에 계약을 체결한 19개 업체 중 경남도 시장개척단의 활동으로 새로 거래처를 뚫은 업체는 1개뿐인 것으로 확인됐다. 결국 경남도가 도내 업체들의 기존 거래선을 자신들의 ‘실적’으로 과대 포장한 셈이다.

단체장들이 ‘시장개척’을 내세워 필요 이상으로 자주 외국 나들이를 하고, 돌아와서는 부풀린 ‘성과’를 내놓는 잘못된 습성이 여전하다. 인기와 다음 선거 때의 표(票)를 의식한 고질병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그런 고질병이 지역주민에게는 허황된 기대를 심어주며 국민경제와 도정(道政)에 해악을 끼친다는 점이다.

강정훈<지방취재팀>man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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