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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0년 11월 2일 19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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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법’이 시민으로부터 멀리 있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공권력이 억울한 시민을 구제해주지 못한다면 시민은 자기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밖에 없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얘기다. 예컨대 빚을 갚지 않고 외국으로 도주하기 위해 비행기를 타려는 채무자를 채권자가 공항에서 붙잡는 것과 같은 경우다.
이것이 이른바 ‘자구(自救)행위’ 또는 ‘자력구제(自力救濟)’의 법리다. 형법 제23조와 민법 제209조는 아주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 이를 인정하고 있다. ‘법정절차에 의해 정당한 권리(청구권)를 보전하기 어려운 경우 이를 해결하기 위한 개인의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처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력구제는 원시시대의 유물이다. 국가공권력이 제대로 확립되지 않았던 원시시대에는 억울함을 당한 피해자가 자신의 실력으로 피해구제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이갑우씨 사건의 항소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는 이씨의 사례가 형법이 예외적으로 인정하는 자구행위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법조인들은 사실상 자구행위의 법리를 인정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해석한다.
법조인들은 이씨의 사례가 우리 사회의 후진성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경찰 등 공권력은 시민이 절실히 필요로 할 때 잘 다가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변호사는 “국가가 시민을 보호해주지 못할 때 시민은 그 국가에 세금을 내며 살 이유가 없어진다”고 말했다. 서울지검의 한 검사도 “피의자에 대한 인권보호는 많이 향상됐지만 피해자의 권리구제에는 점점 소홀해지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수형기자>so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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