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외교가]'한국어 달인들' 사투리도 척척

  • 입력 2000년 11월 2일 19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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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 미국 대사관에는 데이비드 스트라웁 정치참사관과 마크 내퍼 2등서기관, 제럴드 매클록린 대변인 등이 내로라 하는 ‘한국말 선수’들. 내퍼 서기관은 한국에 부임한 지 근 3년이 돼 가는데 말투는 물론, 식성까지 한국 사람을 빼닮았다. 스트라웁 정치참사관과 매클록린 대변인도 유창한 한국말로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한다.

이들 ‘3인방’의 공통점은 부인이 모두 미국인이 아니라는 점. 내퍼 서기관은 일본인 부인을 두었고 스트라웁 참사관과 매클록린 대변인의 ‘안사람’은 모두 한국인. 다른 외교관보다 한국말을 빨리 습득할 수 있는 ‘천혜의 환경’을 갖춘 셈.

미 대사관에서 근무할 외교관들은 부임하기 반년전쯤 한국에 온다.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공포의 한국어 코스’. 남영동 대사관 공보과 건물에 있는 국무부 산하 FSI랭기지센터에서 오전 9시에서 오후 3시까지 하루 종일 수업을 받는다. 과정의 마지막 단계에는 작문 구술 독해 시험을 치러야 하는데 반드시 통과해야만 외교관으로 부임할 수 있다. 한 과목이라도 떨어지면 다시 시험을 치러야 한다.

주한 독일 대사관에서 ‘나비 넥타이의 사나이’로 통하는 디르크 휜들링 2등 서기관(47). 한국 속담에다 가끔씩 대구 사투리를 섞어 가며 구수한 목소리로 전화 통화를 하기 때문에 한국사람으로 오해받기도 한다. 독일대사관이 주관하는 회견 도중 한국 기자들이 녹음기를 들이대면 “받아 적어요. 녹음하면 사람이 소처럼 게을러져요”라고 농담을 건네 폭소를 자아내기도 한다. 그는 서울대 국문과 대학원에 유학한 뒤 보쿰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84년부터 7년동안 대구 효성여대에서 독문학을 강의하다 91년부터 독일대사관 통역관으로 눌러앉았다. 한용운의 시 ‘님의 침묵’을 좋아한다는 그는 요즘 한국인 부인과 함께 전남 담양에 있는 150평 규모의 주말농장에 내려가 직접 채소를 가꾸는 게 삶의 낙이다.

올해로 한국생활 3년째인 영국대사관 크리스 고치 2등 서기관(30)은 1년째 애독하고 있는 동아일보가 한국말 교과서. 그는 매일 집으로 배달되는 동아일보 기사에 밑줄을 그어가며 한국어를 공부한다. 꼬박 3년을 미 8군에 개설된 어학코스를 다닌 덕분에 농담도 자유자재로 건넬 수 있다. 광화문과 신촌 등 유명한 한국 음식점은 안간 곳이 없을 정도. 그가 한국말로 음식을 주문하면 처음에는 어리둥절해 하던 식당 종업원들도 이제 스스럼없이 농담을 주고받곤 한다. “특히 신촌 닭갈비가 너무 맛있어요. 처음에는 매운 맛 때문에 고생을 했지만 이제 한국 음식을 하루라도 안 먹으면 이상할 정도예요.”

주한 이란대사관의 모르테자 솔탄푸르 2등서기관도 한국말 실력이 만만치 않은 수준. 93년 서울시가 주최하는 외국인 웅변대회에서 1등을 한 실력파다. 올해 연세대 국문과 대학원 3학기째인 솔탄푸르 서기관은 한국 현대문학사를 아랍어로 번역하는 ‘주경야독(晝耕夜讀)’을 계속하고 있다. 한국에서 박사 과정까지 끝내고 고국으로 돌아가서 테헤란대에서 교편을 잡는 것이 그의 꿈.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작품으로 이광수의 ‘무정’을 꼽는다. 그는 1986년부터 4년간 북한 김일성 대학에 유학하면서 한국말을 배웠다.

<백경학·이종훈기자>stern10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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