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동영/러브호텔과 축포

  • 입력 2000년 10월 3일 19시 05분


2일 오후8시 경기 고양시 일산구 마두동의 한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는 ‘러브호텔 및 유흥업소 난립 저지 공동대책위원회’ 5차 회의가 열렸다. 10평 남짓한 사무실은 50여명의 주민들로 발디딜 틈조차 없었다.

주민들은 회의에 참석한 지역구 국회의원에게 질문공세를 퍼부었다.

“여러 관계부처가 함께 대책을 만든다는 데 서로 책임을 피하기 위한 것 아닌가요?”

“숙박계를 꼼꼼히 쓰도록 해 결과적으로 영업이 잘안되게 하겠다는 대책은 현실성이 없습니다.”

한 주부는 “러브호텔 앞에 사는 주민들의 고통을 제대로 파악한다면 더 이상의 신축을 막고 기존 업소도 반드시 폐쇄토록 해야 한다”고 말하다 감정이 복받쳐 눈물까지 글썽였다. 그러나 정작 행정적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고양시 공무원의 모습은 회의가 끝날 때까지 보이지 않았다.

회의가 한시간 넘게 지속됐을 때 밖에서 기관총을 쏘듯 ‘드드득, 펑’하는 굉음이 울려퍼졌다.

놀란 주민들은 심야 총격전이라도 벌어진 게 아닌가 하고 눈을 둥그렇게 떴다. 경찰서에도 문의전화가 빗발쳤다.

굉음은 고양시가 후원한 시민의 날 기념행사 도중 호수공원 앞 미관광장에서 쏘아 올린 수백발의 ‘축포’소리였다. 공대위 회의에서 시민들이 안타깝게 기다리던 공무원들은 대부분 이곳에서 축포를 감상하고 있었다.

이 시각 자동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대화역 부근의 러브호텔 밀집지역.

주차장들은 번호판을 가린 중대형 승용차로 가득 찼고 주변 이면도로에까지 서울 인천 등의 번호판을 단 차량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주민들은 내 지역을 부끄럽지 않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밤늦도록 애를 태우는데 또 다른 한쪽에선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축포소리가 울려 퍼지고, 그들 앞의 러브호텔은 휘황찬란한 네온사인 불빛을 내뿜으며 성업중인 곳. 여기가 일산신도시다.

이동영<이슈부>arg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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