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느낌 다른 멜로영화 3편 ＂이 가을엔 사랑하세요＂

가을은 감상(感傷)의 계절. 까닭없이 마음이 서글퍼져 밤새 뒤척이고, 서늘한 바람 속을 불안스레 서성이는 사람도 있으리라. 이 계절의 정서가 담긴 멜로 영화들이 30일 동시에 개봉된다. 모두 톱 스타들이 출연했으나 보는 이의 나이, 처한 위치에 따라 다른 느낌을 얻게 될 ‘가을영화’ 들여다보기.

#20대 연인이라면-'뉴욕의 가을'

‘러브스토리’의 2000년 버전 격인 영화. 부유한 멋쟁이 뉴요커 윌 킨(리차드 기어)은 냉소적인 바람둥이다. 그는 딸쯤 되는 샬롯(위노나 라이더)을 보고 마음이 이끌리지만, 샬롯을 유혹한 뒤에도 “내게 사랑을 기대하지 마라”고 못박는다. 불치병에 걸린 샬롯 역시 윌 킨과 함께 하는 미래를 기대하지 않는 건 마찬가지. 서로를 바꾸려들지 않는 현대 뉴요커들의 계약 연애처럼 보이던 영화는 윌 킨의 외도에 샬롯이 분노하는 대목이후 고전적인 ‘눈물의 멜로’로 바뀐다. 샬롯의 죽음에 직면한 윌 킨이 마음을 다잡고, 연인을 구하려 애쓰는 과정을 통해 삶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는다는 이야기. 위노나 라이더의 깜찍한 매력이 돋보인다. 너무 센티멘털하고 상투적인 줄거리에 ‘닭살’이 돋는 사람도 이 영화에 담긴 뉴욕의 가을 정취에는 불평하기 어려울 듯. 감독은 할리우드에 성공적으로 진출한 중국배우 조안 첸. 15세이상 관람가.

#부부들의 이야기-'스토리 오브 어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의 로브 라이너 감독이, 해리와 샐리의 결혼 10여년 후를 상상하며 만든 것 같은 코미디. 벤(브루스 윌리스)과 케이티(미셸 파이퍼)부부. 불같은 연애 끝에 결혼했지만 구질구질한 일상에 낭만이 걷히고, 매력적이던 상대의 버릇이 점점 참을 수 없어지면서 별거까지 하게 됐다. 결혼생활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 “결혼해서 살다보면 증오조차 없어진다”는 벤 친구의 ‘명언’을 비롯한 재치있는 대사들이 웃음을 자아낸다.

이들이 화해하는 마지막 장면은 보는 이에게 ‘화해가 저렇게 쉽다면이야…’하는 한숨을 짓게 하지만, “결혼은 역사”라는 케이티의 눈물어린 호소엔 고개가 끄덕거려진다. 부드럽고 쓸쓸한 기운이 감도는 에릭 클랩튼의 음악이 코믹한 정서가 가볍게 튀지 않도록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15세이상 관람가.

#여성의 정절과 정열 사이-'피델리티'

파격적 성묘사로 유명한 폴란드 출신 안드레이 줄랍스키 감독이 9년만에 연인 소피 마르소를 출연시킨 ‘피델리티’는 부부간 정절의 의미를 묻는 작품. 자유분방한 사진작가 클레리아(소피 마르소)는 어머니의 옛 연인인 언론재벌 맥로이에게 스카웃 제의를 받고 파리로 이주한다. 그는 우연히 잠자리를 함께 한 중년남자 클레베(파스칼 그레고리)와 결혼하지만, 젊고 매력적인 사진작가 네모(기욤 카네)를 만나며 흔들리기 시작한다.

줄랍스키만 만나면 전라연기를 불사하는 소피 마르소는 이제 소녀같은 청순미를 완연히 떨쳐버렸지만 줄랍스키의 영상은 모호하다. 클레베의 형인 대주교는 하녀와의 사랑을 위해 사랑의 도주를 택하게 하면서 정작 결혼전까지 즉석 섹스도 마다않던 클레리아는 네모에게 몸을 허락하지 않는 것으로 정절을 지킨다고 믿는다. 클레베의 입장에 가까운 남자들에게는 불편하지만, 클레이아 입장에 가까운 여자들에겐 짜릿하게 다가갈 영화. 18세이상 관람가.

<김희경·권재현기자>susan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