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공포택시>엽기발랄한 한 밤의 질주극

  • 입력 2000년 9월 26일 19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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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면 <공포택시>는 언뜻 공포영화로 오해하기 쉽다. 그러나 사실은 '판타지'라는 큰 그릇 안에 코미디와 스릴러, 엽기 발랄한 공포를 버무린 '잡탕밥' 같은 영화다.

<공포택시>의 주인공은 물론 평균 시속 150km로 달리는 '공포택시'. 기름 대신 피를 연료로, 인간의 심장을 엔진으로 갈아 끼운 이 공포택시는 영화를 온통 헤모글로빈 가득한 핏빛으로 물들여놓는다.

오랫동안 운수회사 사장의 횡포를 견뎌온 길남(이서진)은 개인택시 면허증을 손에 쥐고 애인(최유정)에게 청혼하러 가던 도중 자동차 전복사고를 당하는 인물. 사건이 발생한 지 49일만에 영혼으로 부활한 그는 자신의 죽음이 결코 우연한 사고 때문은 아님을 알게 된다. 길남의 죽음은 바닥난 연료를 채우려는 공포택시 운전사의 농간에 의해 발생한 것이며, 이 사건엔 악한 영혼을 뒤집어 쓴 친구 병수(임호)의 음모가 깊이 개입되어 있음이 밝혀진다. 이것은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설정, 바로 <사랑과 영혼>과 비슷한 모티프다.

공포택시 운전사와 길남의 숨막히는 대결로 이어지는 이 영화는 고답적인 선과 악의 이분법적 논리 안에서 결국 '착한 영혼'의 손을 들어주는데, 이것 역시 <사랑과 영혼>의 결말과 무관하지 않다. 다만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며 사랑을 나누는 두 연인의 애틋한 그리움이 빠져있다는 것이 약간 다를 뿐이다.

이렇듯 <공포택시>의 두 연인이 애틋한 그리움을 자아내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누가 산 사람이고 누가 죽은 사람인지 헷갈릴 만큼, 이 영화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어놓았기 때문이다. 산 사람들은 모두 아무 어려움 없이 '육체 없는 영혼'을 볼 수 있으며, 귀신들은 옆집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듯 산 사람들과 허물없이 대화를 주고받는다. 이것은 판타지의 정수일까. 아니면 오버의 미학일까.

거만한 '논스탑'은 방정맞은 오케이에게 '오버하지 말라'고 연신 떠들어대는데 따지고 보면 <공포택시>에서 오버하지 않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이것은 신인 배우들의 덜 다듬어진 연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만화 캐릭터처럼 빚어진 조연들의 썰렁한 농담, 튀는 의상, 엽기적인 식성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엽기의 성격은 공포가 아니라 황당한 코미디 쪽에 가깝다.

어쩌면 이것은 엽기적인 것들을 좀더 발랄하게 표현해보고자 하는 감독의 의도였을지 모르지만, 감독은 엽기에도 나름의 '품격'이 있음을 잠시 잊은 듯하다.

이 영화를 연출한 허승준 감독은 <홀리데이 인 서울> 연출부, <생과부 위자료 청구소송> 조연출을 거쳐 <공포택시>로 감독 데뷔한 인물. 재즈칼럼리스트로도 활동한 바 있는 그는 언더그라운드 록밴드 '이발쑈 포르노 쇼'의 음악을 영화에 삽입하거나 실제 그들의 연주모습을 등장시키는 등 음악에 대한 열정을 아낌없이 담아냈다.

그러나 블록버스터 영화다운 스토리와 영상 안에 인디영화적 감수성을 구겨 넣은 것은 역시나 부자연스럽다. B급 영화의 정신을 수호하려는 듯 엽기 발랄한 상상력을 만들어낸 것까지는 좋았는데, 8억 원의 적은 예산으로 만들어낸 영상은 사실 조악한 수준이다.

<공포택시>는 B급 영화다운 상상력으로 밀고 나가거나 거대 예산의 블록버스터로 버전 업 시키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하는 게 나을 뻔했다. 9월30일 개봉.

황희연 <동아닷컴 기자> benot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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