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구효서의 경의선 열차 가상 탑승기

  • 입력 2000년 9월 17일 19시 04분


오랫동안 관상동맥경화증(冠狀動脈硬化症)을 앓고 계신 아버지와 경의선 열차를 탔다. 북에 계신 ‘큰어머님’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젊은 시절 아버지는 그것이 마지막 열차가 될 것이라는 걸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채, 배웅 나온 아내를 사리원역에 남겨두고 신의주발 용산행 경의선 열차에 몸을 실으셨던 것이다. 그 때 사리원역에 남겨두고 왔던 아내를 찾아, 56년만에 개통된 경의선 열차를 다시 타게 된 것이다. 내 어머니는 아니지만 아버지에겐 여전히 아내였으므로 내게도 어머니인 셈이었다.

남쪽의 아내인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아버지는 부쩍 북쪽의 어머니를 보고 싶어 하셨다. 남쪽의 어머니도 아버지가 북쪽의 아내를 만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며 눈을 감으셨다.

다른 이산가족들은 면회소를 통해 상봉할 기회를 가졌지만 아버지는 그 때마다 악화되는 심장 관상동맥경화증 때문에 움직일 수 없었고, 북에 계신 어머니마저 거동이 불편하시다는 편지만 두어 차례 보내왔던 터였다. 경의선 개통에 맞추어 아버지의 병세가 호전된 것은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혈압강하제와 혈압측정기를 가방에 챙겨 넣고 서울역에서 아버지와 함께 열차에 올랐다. 열차가 자유의 다리를 건너 금릉을 지날 때 차창 밖으로 백학산의 갈맷빛 봉우리가 멀리 바라다 보였다.

마침내 열차는 긴장과 침묵으로 잠자던 비무장지대를 빠르게 통과하고 있었다. 그러나 남북이 힘을 합쳐 새로 단장한 철로변엔 어느 새 칸나와 달리아의 부용꽃들이 활짝 피어 있어 지난 세월의 엄혹했던 반목과 대립의 기운을 좀처럼 느낄 수 없었다. 이따금씩 열차에 놀란 산양과 족제비가 숲으로 도망을 쳤고, 푸른 하늘엔 몇 마리의 학도 한가로이 날았다.

열차는, 허망할 만큼 빨랐다. 비무장지대의 복원구간을 다 통과하여 개성 외곽의 탄동까지 이르는데 28분 밖에 걸리지 않았다. 28분이면 닿을 거리를 56년이나 걸려 가다니….

북쪽으로 달리는 열차가 빨랐던 만큼, 차창을 스치는 철로변의 붉은 여름꽃들은 기다란 띠를 이루어 남쪽으로 남쪽으로 혈관처럼, 폭포처럼 흘렀다.

아버지가 갑자기 후우, 큰숨을 내쉬었다. 근래 보기 드물었던 깊고 큰 숨이었다. 놀란 나는 얼른 혈압측정기와 약을 꺼냈다. 그러나 아버지는 가만히 손을 내저으셨다. 아침까지도 위태로워 보였던 아버지의 혈색이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의 심근에 줄곧 경색을 가져왔던 관상동맥의 피들이, 복원구간을 지나면서 제대로 순환되었다는 말일까.

“북의 어머니는 어떤 분이셨습니까?” 내가 여쭈었다. 아버지는 차창 밖에 흐르는 붉은 여름꽃들을 바라보며 말씀하셨다. “저 부용꽃 같았지….”

구효서(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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