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대통령의 현실인식 문제 있다

  • 입력 2000년 9월 16일 18시 53분


국내정치든 남북관계든,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현실인식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적지 않다.

엊그제 민주당 초재선 의원 13명이 한자리에 모여 발언한 내용의 핵심도 김대통령이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들 의원은 한빛은행 불법대출의혹, 의약분업의 혼선과 국민불편, 국회법 날치기사건, 당지도부의 무기력 무책임 등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같은 국정의 혼선과 난맥 상황이 풀리지 않는 것은 결국 여당총재인 김대통령이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냐는 것이다.

그런데도 청와대측은 “상황인식 부족에서 오는 사려 깊지 못한 목소리”라고 일축한다. 김대통령 역시 “국회법에 따라…” “조사결과에 따라…”라는 식의 원칙론만 고수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지금의 국정 난제는 그런 원칙론만으로 풀릴 상황은 아니다.

최근 김대통령의 몇몇 발언을 보면 남북문제에 대한 인식에도 뭔가 잘못된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다. 민족의 숙원을 이루려는 김대통령의 의욕과 열성은 좋지만 남북관계의 현실과 이에 대한 민심의 동향을 좀더 냉철하게 보아야 할 것 같다.

김대통령이 최근 민주당 6역의 주례보고 자리에서 “북한은 지금까지 내걸었던 주한미군철수, 연방제실시, 국가보안법폐지 등 3가지 전제조건을 다 거둬들였다. 양보는 북한이 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한 발언은 언뜻 우리가 북한에 무슨 큰 양보라도 받아낸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북측은 그같은 세가지 사안에 대한 입장변화를 공식적으로 밝힌 사실이 없다.

북측으로부터 큰 양보를 받아냈다는 인식을 갖고 대북정책을 펴면 자칫 균형을 잃을 수 있다. 그러잖아도 남북접촉의 시기나 장소결정 등에서 북측의 주장이 거의 그대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현실 때문에 우리가 북한에 일방적으로 끌려다니고 있다는 비판의 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14일 발표된 남북공동보도문의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에 대한 존칭과 김용순(金容淳)노동당 비서에 대한 일부인사의 과공(過恭)도 따지고 보면 북한에 대한 편향된 인식에서 나온 현상으로 볼 수 있다.

북한에 대한 그같은 인식은 조급하게 뭔가 이루겠다는 성과주의 때문에 더욱 심해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소리도 있다. 어떤 시한에 쫓기듯 성과주의에만 급급하다보면 당당치 못한 처신이 생기기 마련이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