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최기련/기름값만 올리면 그만인가

입력 2000-09-14 19:28수정 2009-09-22 0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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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급등으로 '제3의 오일쇼크'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70, 80년대 오일쇼크 때 3% 수준의 공급부족으로 가격은 3∼4배 올랐는데 이번에도 수급 불균형의 폭이 비슷한 점을 고려하면 30달러 수준의 고유가 시대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지난 20여년 동안 누적된 산유국들의 불만이 그들의 단결을 유도하고 있어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하고 있다.

현 상황은 과거 두차례의 오일쇼크와는 그 성격이 다르다. 과거 오일쇼크는 지역분쟁 등 정치적 요인 때문이어서 평화정착과 함께 해소됐지만 이번에는 수급구조 변화라는 경제적 요인에 기인하고 있다. 경제위기는 정치위기보다 그 해결에 더 긴 시간이 걸리고 우리 내부 문제로 귀결된다.

조만간 25달러 수준으로 내려갈 것이라는 미국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예측에 바탕을 둔 정부의 경제정책 운용체계는 일시에 혼란에 빠지고 있다. 선택할 정책적 대안이나 능력이 거의 없는 상황에 놓여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의 문제는 위기상황에서 효과적인 단기대응책은 제시하지 못하고 석유비축 증대, 이용효율 향상과 같은 장기대책만 제시하는 정책 대응능력의 부재로 요약된다. 전형적인 '정부실패' 사례로 발전할 수 있다.

우리의 에너지 수입의존도는 98%나 되고 에너지가격은 실질 구매력 기준으로 이미 세계 최고수준이라 더 이상의 가격인상은 민생 복지 뿐만 아니라 국제경쟁력에도 결정적 타격을 줄 것이다. 정부의 에너지 정책은 최악의 위기상황을 고려한 국가안보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다는 점이 간과돼 왔다. 정부의 대응능력은 전문성 미흡으로 우려할 수준이다. 이러한 위기상황에서는 과거 경험이나 다른 나라 사례가 큰 도움이 안된다.

정부는 근본대책으로 에너지 가격인상과 에너지 절약시책을 검토하고 있다. 과거 위기 때마다 내놓았던 대책을 되풀이하는 수준이다. 그 내용도 가격인상은 해외요인의 국내 소비자가격으로의 단순 전가에 불과하고 에너지절약은 이용 합리화가 아닌 무차별적인 소비 억제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정부대책은 소비자의 희생을 강요하고 수출경쟁력을 도외시한 것이다. 물가나 민생 복지에 미칠 악영향은 감안하지 않은 것이다.

다급하게 제시되는 정책은 그 실효성이 오래 지속될 수 없고 결국은 대체연료 개발, 이용합리화, 산업구조 개편 같은 장기적인 에너지정책 추진의 타당성마저 훼손해 미래의 위기 대응능력을 떨어뜨리는 악순환을 초래한다.

이제라도 정부실패의 연속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정부 정책은 국익과 민생복지를 위한 단기대책에 중점을 둬야 한다. 그 첫 단계는 에너지세 인하로 국내 소비자가격 급등을 막는 것이다. 적어도 지금 수준에서 가격이 동결돼야 한다. 국세의 15%를 차지하는 에너지세 때문에 에너지 소비자가격이 OECD 최고 수준임을 감안할 때 세금을 감면할 여지는 충분하다. 조세정책의 하위수단으로 전락한 에너지정책을 복구해야 한다. 가격인상을 통한 에너지절약은 낮은 가격 탄력성과 기술적 한계로 단기간에 그 효과를 낼 수가 없다.

장기대책과 단기대책을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이 위기상황에서 장기대책만 논하고 외국사례나 인용하는 것은 세수(稅收)정책 범주에 안주하는 정부의 고통분담 회피로 오해될 수 있다.

지식정보화사회의 정착단계에 있는 우리사회의 발전을 위해서는 구성원간의 다양한 교류와 접촉을 위한 에너지의 적정 소비수준은 보장돼야 한다. 에너지를 사치재가 아니라 필수재로 인식해야 한다. 에너지라는 중간 투입재가 경제 전반에 미치는 긍정적 승수효과를 극대화하는 정책이 요구된다. 소비절약은 단기적으로는 높은 가격에 의해 달성되지 않고 개별 경제주체들의 국제경쟁력 수준의 판단 등 자발적 행동에 의해 이뤄진다.

정부는 준비 미흡으로 에너지절약을 지원할 충분한 재원과 기술이 없다. 따라서 과도한 시장개입을 자제하고 소비자보호 차원에서 세금조정과 과도한 가격인상 방지에만 주력할 필요가 있다. 실패한 경험이 있는 에너지절약을 명분으로 한 시책들은 재검토돼야 한다.

최기련(아주대교수·에너지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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