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원폭 잔혹성 폭로' 日 만화 국내 출간

  • 입력 2000년 9월 14일 18시 40분


1945년 8월6일 8시15분. 일본 히로시마 600m 상공에서 원자폭탄이 투하돼 터지던 순간. 히로시마의 시간은 멈췄다. 5000도가 넘는 열선과 강렬한 빛에 노출된 사람들의 살갗은 죽처럼 녹아내렸다.

최근 발간된 ‘맨발의 겐’은 초등학교 1학년 때 원폭을 체험한 나카자와 케이지(中澤啓治·62)의 자전적 만화. ‘맨발의 겐’은 73년 일본 만화잡지 ‘점프’에 소개된 뒤 10권의 단행본으로 나와 1000만권 이상 팔렸다.

주인공 겐은 학교 콘크리트 담장 바로 아래 있던 덕분에 무사했다. 그러나 얘기를 나누던 한 아줌마는 살이 녹아버렸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무너진 건물에 깔린 아버지 누나 남동생이 불길에 휩싸이는 광경을 지켜봐야 했고 그 불길을 피해 달아나야 했다. 간신히 살아남은 어머니와 갓 태어난 동생을 위해 수많은 시체와 유령처럼 떠도는 생존자들의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쌀을 구해야 했다.

만화는 ‘원폭 피해자로서의 일본’이라는 단순한 주장에 그치지 않는다.

원폭 몇달전 겐의 아버지는 “일본의 군국주의자들이 만들어낸 전쟁쇼에 애꿎은 국민들만 피해를 보고 죽어간다”는 전쟁 반대 발언으로 ‘비국민’으로 낙인찍힌다. 겐의 가족은 마을에서 왕따를 당하면서 고초를 겪는다. 이를 부끄럽게 여겨 군에 입대한 겐의 형은 천황과 대일본제국을 위한다며 젊은이들을 가미가제(神風)로 내모는 비이성적 상황을 보며 자신의 선택을 후회한다. 일본인 이웃이 겐 가족을 따돌릴 때 유일하게 도와준 ‘조선인’ 박씨의 존재….

이번에 국내에 나온 것은 총 10권 중 1, 2권.

작가는 “반전 반핵 반차별 뿐만 아니라 ‘밟혀도 밟혀도 자라는 보리처럼’ 절망을 뚫고 일어서는 ‘용기’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아름드리미디어, 김송이 이종욱 옮김. 각 5000원.

<서정보기자>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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