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는 살아있다]피터팬 "저는 결코 외롭지 않아요"

  • 입력 2000년 9월 8일 18시 33분


저는 피터 팬이에요. 절대로 자라지 않고 언제나 어린이로 남아 있는 소년이죠. 하늘을 날아다니고, 요정을 마음대로 부리고, 해적들과 싸우고…. 그렇게 네버랜드에서 숨돌릴 틈도 없이 모험을 즐기면서 살아요. 네버랜드뿐인가요? 현실 세계도 얼마든지 드나들며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답니다.

1904년 제 이야기가 처음으로 런던에서 연극으로 공연된 뒤 저는 어린이 문학 세계에서 하나의 신화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제 이야기를 본뜬 동화들이 쏟아져나오고, 어린이 연극 무대의 단골 레퍼토리 노릇을 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아마 지구상 어딘가에서 제 이야기가 공연되고 있을걸요? 디즈니 만화를 비롯해서 영화나 텔레비전 프로그램도 셀 수 없지요. 심지어는 로빈 윌리암스 피터 팬에 줄리아 로버츠 팅커 벨까지 나오더군요. 좀 징그럽더라구요!

그런데, 저처럼 유명하면서 또 저처럼 오해받고 있는 인물은 없을 거예요. 사람들은 정말이지, 저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라요. 초록색 나뭇잎으로 치장한, 용감하고 낙천적인 아이. 그 정도겠죠. 그리고는 해적과의 싸움에만 정신을 팔겠죠. 하지만, 아니에요. 영원히 아이로 머무르면서 재미있게 노는 삶을 택한 대신 치르는 대가가 얼마나 큰지 아세요?

저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이방인으로 살아야 합니다. 아무하고도 진실하고 지속적인 관계를 맺지 못합니다. 함께 지내던 아이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가 엄마 아빠와 함께 기뻐할 때 저는 창밖에 숨어 있습니다. 그 아이들이 저는 ‘앞으로 영원히 맛보지 못할 환희’를 누리는 걸 쓸쓸하게 보고만 있는 거죠.

저는 또 어린 아이로 남는 대가로 추억을 내놓아야 합니다. 후크 선장과 팅커 벨, 심지어는 엄마에 대해서도 잊어 버립니다. 저에게는 과거도 미래도 없고, 오직 현재만 있을 뿐이에요. 그러니 뭔가를 이룬다 해도 그게 큰 의미가 있을 리 없지요. 후크 일당을 물리친 날 밤, 제가 뭘 하는지 아세요? ‘늘 꾸는 슬픈 꿈을 꾸고는 아주 오랫동안 잠 속에서 엉엉’ 우는 거예요. 그게 무슨 꿈인지는 모르겠어요. 창문을 닫아 버려 제가 들어갈 수 없도록 만든 엄마 꿈인지도 모르죠.

그래요. 네버랜드에서 피터 팬으로 살아간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랍니다. 하지만 ‘밝고 천진난만하고 새로운 것에 홀딱 빠져 버리는’ 새로운 아이들이 계속 오는 한 저는 힘을 얻을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아이들을 보내 주세요. 그리고 아이들은 알지 못하는 저의 외로움과 슬픔을, 어른들은 이해하고 같이 느껴 주세요.

김 서 정(동화작가·공주영상정보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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