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뷰]큐브릭감독 유작<아이즈 와이드 셧>,드디어 개봉

  • 입력 2000년 8월 24일 18시 39분


소문만 무성했던 스탠리 큐브릭감독의 유작 ‘아이즈 와이드 셧(Eyes Wide Shut)’이 드디어 9월2일 국내에서 개봉된다.

자기 작품에 대한 완벽주의적 집착으로 유명한 큐브릭감독은 이 영화 역시 내용을 일절 공개하지 않고 13주로 예정된 촬영기간을 15개월로 늘리며 ‘악명’을 떨치다 최종편집 직전인 지난해초 세상을 떴다. 국내 개봉 필름은 몇 장면에 모자이크 처리를 했지만, 컴퓨터 그래픽으로 혼음 파티 장면을 수정한 미국 개봉판이 아니라 유럽에서 상영된 원본이다.

큐브릭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욕망을 통제하며 사는 인간에 대한 영화”라고 밝힌 ‘아이즈 와이드 셧’은 그의 영화중 최고라고 할 수는 없어도 최면적인 깊이를 갖춘 수작이다.

‘2001년 스페이스 오디세이’ ‘시계태엽 오렌지’ ‘샤이닝’ 등에서 이성과 사회질서 이면의 혼돈을 파고든 큐브릭은 ‘아이즈 와이드 셧’에서도 뉴욕 상류층 부부가 겪는 위기를 통해 인간의 잠재의식 속에 똬리를 튼 성적 욕망의 파노라마를 펼쳐 보여준다.

빌(톰 크루즈)과 앨리스(니콜 키드먼) 부부가 크리스마스 파티 외출준비를 하는 첫 장면에서부터 안정된 결혼 생활에 균열의 조짐이 보인다. 앨리스는 “나 어때?”하고 묻고, 빌은 “완벽하다”고 대답하지만, 사실 앨리스는 변기 위에 앉아있고 빌은 거울을 보며 옷매무새를 다듬느라 정신이 없다.

이들은 파티에서 각각 이성의 유혹을 받은 뒤 언쟁을 벌이고, 앨리스는 자신의 성적 환상을 고백한다. 아내의 고백을 듣는 순간 질투심에 사로잡힌 빌은 성적 욕망을 좇는 긴 여정에 오른다.

이 영화는 빌이 경험하는 비밀 혼음파티와 그 후 죽은 여자의 정체를 둘러싼 스릴러의 형식을 취했으나 힌트만 흘릴 뿐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모든 장면들은 현실이 꿈같고, 꿈이 현실같다. 빌은 현실에서 욕망을 좇지만 이루지 못하고, 앨리스는 꿈을 통해 현실에서 맛보지 못한 욕망을 성취한다. 이들이 각각 현실과 꿈에서 겪는 경험은 거울처럼 서로를 비춘다.

이 영화의 성적 유혹은 모두 죽음의 이미지와 연결돼 있다. 빌의 고객은 죽은 아버지 앞에서 빌을 유혹하며, 빌이 관계를 가질 뻔했던 창녀는 AIDS환자였고, 혼음파티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욕망과 그 욕망의 끝에 놓여있을 파멸에 대한 공포, 낮과 밤, 꿈과 현실 사이를 오가던 영화는 의외로 ‘도덕적’인 결론에 다다른다. 그러나 영화의 미스테리한 기운은 여전하다. 억눌린 에로스적 충동은 언제까지 잠들어 있을 것인가. 질끈 감긴 눈(Eyes Wide Shut)은 언제 다시 떠질지 모르는 일이다.

원색의 대조를 통해 몽환적 분위기를 두드러지게 한 색채와 조명도 훌륭하지만, 무엇보다 니콜 키드먼의 빼어난 연기가 돋보인다. 말 많았던 혼음파티 장면은 자극적이라기보다 시각적 장대함으로 보는 이를 압도한다.

쇼스타코비치의 왈츠로 영화를 이끌고 끝맺는 음악 선곡도 탁월하다. 오스트리아 작가로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의 친구였던 아서 슈니츨러의 ‘꿈이야기’(1926년)가 원작. 18세이상 관람가.

<김희경기자>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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