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외교가]3년만에 이임하는 브라운 英대사

  • 입력 2000년 8월 10일 18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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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발의 신사’ 스티븐 브라운 주한 영국대사(55)가 14일 임기를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간다. 그가 1997년 4월 서울로 들어와 보낸 3년여의 세월은 우리나라가 큰 변화를 겪은 격동기. 요즘 그는 친분을 나눠온 한국인 및 주한 외교사절들과 송별 모임을 하느라 몹시 바쁘다. 어렵게 시간을 낸 그를 만나 한국에서의 생활과 감회를 들어보았다.》

먼저 대사 재임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무엇인지 물어 보았다.

“지난해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한국을 방문하게 된 것이지요. 여왕 방한은 1883년 한―영 수교후 양국 관계에서 가장 큰 행사였습니다. 특히 여왕이 경북 안동을 구경할 수 있도록 해드린 게 기억에 남아요. 한국의 옛 생활 양식이 고스란히 남아있는데다 봉정사의 아름다운 가람들을 여왕에게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카레이싱 즐기는 '속도광'▼

그는 개인적으로는 한국에서 경주용 카레이서 면허를 딴 것을 흐뭇하게 여겼다. 점잖게 생긴 ‘신사의 나라’ 대사가 스피드를 즐기는 ‘속도광’이라는 것은 의외였다.

“경기 용인 에버랜드에서 연습해 왔습니다. 정규 경기장 레이싱 기록을 2.5초나 앞당겼지요. 97년에 처음 경기장을 찾아가 카레이싱하러 왔다고 했더니 잘 믿지 않더군요. 내가 나이도 있고, 직업이 대사라 그런지 그냥 한번 구경하러 온 것으로 치부해버려 설득하느라 땀 깨나 흘렸습니다.”

그는 부인 팜 여사도 카레이싱을 한다고 소개했다. 그는 지난해 11월 국제자동차 경주대회인 ‘F3 코리아 그랑프리’에 나가 당당히 11위를 했다.

그는 대사 재임중 지켜봤던 ‘커다란 이벤트’로는 97년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당선된 것과 올해의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꼽았다.

“평생 야당인으로 한 길을 걸었던 노정치인이 평화적 정권교체를 해낸 것은 감동적인 사건이었지요. 올해의 남북정상회담에는 더욱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김대통령은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에게 믿음을 주는데 성공한 것 같습니다.”

영국은 북한과 최근 4년 동안 매년 2번 정도 평양이나 런던, 벨기에의 브뤼셀 등지에서 정기적인 대화를 가져왔다고 그가 소개했다. 가을에는 영국에서 영어 교사 2명이 평양으로 파견돼 영어 강의를 시작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예나 지금이나 한국인들로부터 받는 강렬한 인상 중의 하나가 바로 ‘경제적 역동성’이라고 털어놓았다.

“한국에 오기 전에 중국에서 근무했습니다. 당시 부쩍부쩍 일어서는 중국 경제의 역동성에 놀랐는데 한국에 와보니 한 술 더 뜨더군요. 특히 경제위기를 빨리 극복한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닷컴기업 등 벤처기업들이 지식기반 경제, 신경제를 이뤄내는 모습을 지켜본 것은 소중한 체험으로 남을 겁니다.”

▼"新경제 역동성 인상적"▼

그는 덕수궁 옆의 대사관저나 장충동 서울클럽에서 지인들을 만나 석별의 정을 나누고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사귀며 정을 나눠온 한국 친구들로부터는 양반갓과 곰방대 부채 그릇 서화 등을, 자신은 영국제 도자기나 여왕 방한 기념 책자를 선물로 주고받았다고 덧붙였다. 신임 찰스 험프리 주한 영국대사는 17일 부임한다.

<권기태기자>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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