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대근/과소비 '특권층'

  • 입력 2000년 7월 21일 19시 07분


프랑스 절대왕정의 상징인 루이 14세 때의 한 재무관은 “세금을 걷는 기술은 거위의 털을 뽑는 것과 같다. 거위의 비명을 줄이면서 털을 많이 뽑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납세자의 입장에선 소름끼치는 얘기가 아닐 수 없다. 뿐만 아니다. 미국에는 “죽음과 국세청의 추적은 피할 수 없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 미국 국세청은 연방수사국(FBI)보다도 더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평가가 있을 정도다. 누구든지 국세청에 잘못 보이면 혼이 나는 것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마찬가지다.

▷국세청이 국내외에서 흥청망청 돈을 써온 이른바 호화 사치 생활자와 과소비 조장 업소의 업주 등 242명에 대해 특별세무조사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동안 은밀히 추적해 본 결과 이들이 소득을 감추는 수법으로 탈세를 한 흔적이 역력하다는 것이다. 지난해 7차례나 해외여행을 하면서 신용카드로 11만달러를 사용하고도 연간 개인소득은 8300만원이라고 신고한 사람, 역시 납세 실적은 별로 없는데도 10억원대의 호화 빌라에 살면서 1년에 10여차례 해외 골프 여행을 즐긴 사람 등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많다는 것이 비난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 오히려 부러움의 대상이어야 하고 그것이 곧 개개인의 경제적 성취를 자극하는 중요한 요인일 수 있다. 때로는 있는 사람들의 작태가 꼴사납기도 하지만 부의 축적 과정이 정당했다면 그들이 그 돈을 마음대로 쓸 권리도 인정해야 한다. 문제는 일하지 않는데도 돈이 생기고, 세금도 내지 않으면서 아무 탈 없이 물 쓰듯 돈을 쓰는 ‘특권층’이 우리 사회에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국세청이 호화 사치 생활자에 대해 특별세무조사라는 칼을 빼 들면서 이 사실을 공개한 것은 성실한 다수 국민의 상대적 박탈감을 감안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성실한 납세자의 입장에선 ‘그것 잘 됐다’는 대리 만족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같은 ‘특별조치’는 약효가 오래가지 못하는 법이다. 미국의 경우처럼 ‘탈세를 한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발을 뻗고 잘 수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도록 평소에 세무 행정에 대한 신뢰를 확보해야 한다.

<송대근 논설위원>dk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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