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인북]'남의 문화 이해하기'얼마나 어려운가

  • 입력 2000년 7월 21일 19시 07분


■문화와 진리

레나토 로살도 지음/아카넷

필리핀 루손 지역 북부에 살고 있는 일롱고트 부족의 노인에게 왜 다른 사람의 머리를 사냥하느냐고 물으면 그의 대답은 매우 간단하다. “비통함에서 비롯된 분노로 인해 같은 인간을 죽일 수밖에 없게 된다.”

‘분노를 처리할 곳’이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희생자의 머리를 베어 던져버림으로써 그가 겪은 상실로부터 생겨난 분노를 터뜨릴 수 있게 되고 나아가 그것을 떨쳐버리길 기대한다는 것이다. 현재 스탠퍼드대 문화사회인류학과 교수이자 미국학술원 회원인 저자는 “이 간단한 대답을 쉽게 설명할 수 있는 인류학자는 없다”고 단언한다.

아내이자 학문적 동지였던 미셸 로살도와 함께 1967년부터 일롱고트 부족의 현지조사를 시작했던 그는 1981년 현지에서 아내를 실족사로 잃는 참사를 겪으며 머리사냥이란 끔찍한 관행을 ‘진심으로’ 이해하게 됐다고 밝히고 있다. 그때의 분노와 무력감으로부터 비롯되는 전신의 떨림과 전율, 통제할 수 없는 통곡, 그리고 수시로 반복되는 흐느낌.

이런 감정적인 상태가 자신을 압도하는 경험을 겪으며 일롱고트 부족이 ‘머리사냥’에까지 나서게 되는 심정을 이해하게 됐다는 것이다. 다른 문화를 이해한다는 것은 바로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다.

이 책은 탈식민화, 인권 시민운동, 여성운동, 전지구적 자본주의화 등 1960년대 이후 일어난 서구사회의 변화에 따라 변모해 온 인류학의 ‘현재’를 담고 있다. 새로운 인류학은 객관주의로 무장한 채 인간의 삶을 하나의 구조화되고 완결된 결과물로 보았던 고전적 인류학의 틀을 벗어나 삶을 지속적으로 전개되는 역동적 과정으로 파악한다.

‘사회분석의 새로운 지평을 위하여’라는 부제의 이 책에서 저자는 소수민족의 삶과 접경지대의 문화, 전통사회의 소멸 등을 살펴보며 인류학만이 아니라 인문사회과학의 이러한 변화상을 점검하며 새로운 연구방향을 모색한다.

로살도교수는 이런 문화다원주의의 역동성을 바로 강의실에서도 발견한다.

“다양한 민족과 인종으로 강의실 구성이 다양해지는 순간에 변화는 시작된다. 고정되어 불변하는 것은 없다. 새로 들어온 학생들은 옛날 농담에 웃지 않는다.

새로운 교수법이 시작된다. 새로운 교수법에는 새로운 강좌를 개설하는 것과 새로운 교재를 추가하는 것도 포함된다.” 권숙인 옮김, 369쪽, 2만원

<김형찬기자·철학박사>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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