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11월 방한 달라이라마 "한국불교 禪전통 관심"

  • 입력 2000년 6월 15일 19시 41분


《티벳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라마가 11월중 서울을 방문한다. 달라이라마는 14일 티벳 망명정부가 있는 인도 다람살라에서 한국 종교기자단을 접견, “한국정부에 불편을 끼치지 않는 범위에서 주요 종교지도자들의 방한 초청을 수락한다”고 밝혔다. 내친 김에 인간과 삶에 대한 그의 견해와 티벳 문제에 대한 입장도 들었다. 》

달라이라마는 격의가 없고 소탈했다. 티벳 불교에서 ‘관세음보살의 환생’인 그를 가리켜 ‘살아있는 부처’라는 말로 경의를 표하자 “부담스럽다. 우리는 똑같은 사람”이라며 자신을 낮췄다.

망명정부를 이끄는 힘든 처지에서도 실내가 쩌렁쩌렁 울리는 호쾌한 웃음을 터뜨리며 수시로 ‘아이 엠 해피’라고 말하는 달라이라마. 하지만 그를 만나러 가는 길은 그야말로 ‘고행(苦行)’이었다. 인도 뉴델리에서 북쪽으로 약 600km 떨어진 히말라야 산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다람살라. 뉴델리에서 찬디가르까지 3시간동안 특급기차를 타고 가 버스를 갈아타고 쉴새없이 8시간동안 협곡사이로 난 천길 낭떠러지를 달려야 도착할 수 있는 곳이다.

―한국 방문에 어떤 의미를 두고 있는가.

“티벳에서 망명한 이후로 불교국가들을 방문하고 싶었고 그중의 하나가 한국이다. 60년대 동국대에 티벳대장경을 기증한 것을 계기로 많은 티벳승려가 한국을 방문하고 돌아와 오래전부터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티벳이나 한국이나 모두 대승불교의 경전을 많이 갖고 있지만 한국은 선의 전통도 강해 많은 것을 배우고 싶다.”

―한국 방문이 성사되면 무엇을 하고 누구를 만날 것인가.

“몇몇 한국인 친구들이 가져와서 먹어보긴 했지만 한국의 김치맛을 보고 싶다(웃음). 어떤 방문에서나 나의 넘버 원 목표는 인간의 가치를 증진시키는 것이다. 불교에 국한하지 않고 일반 학자, 일반 대중을 만나고 싶다. 어느나라를 가든 나의 방문은 비정치적이고 영적인 것이다.”

―남북한 정상이 분단이후 처음으로 만났다.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무력을 써서 문제를 해결하려 하면 부정적인 결과를 남긴다. 문제를 완벽히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대화다. 사람들은 대화하지 않고 자꾸 홀로 남아 있으려 한다. 서로 한발짝 앞으로 다가서야 한다. 대화를 할 때는 첫째는 인내, 둘째는 결단, 셋째는 넓게 바라는 것,즉 전체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 내 기억으로는 한국이 분단된지 54년이 흘렀다. 인내력은 충분히 길렀을 시간이다.”

―한국은 분단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반면 티벳은 독립을 위해 싸우고 있다. 어떻게 독립을 얻을 것인가.

“확실히 말해두고 싶은 것은 나는 티벳의 ‘자주독립’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티벳의 문화와 종교를 보존할 수 있는 ‘완전한 자치’를 원한다.”

혹시 있을 지도 모르는 위해에 대비해 달라이라마의 궁은 35명의 티벳인 군인과 120명의 인도인 군인이 지키고 있다. 접견을 위해 궁으로 들어갈 때는 금속탐지기를 통과하고 경비원들에 의해 2차례에 걸쳐 철저한 몸수색을 받아야 한다. 긴장된 마음으로 접견대기실에 앉아있는데 커다란 마하트마 간디의 초상화가 눈에 띈다. 간디의 비폭력주의에 영향을 많이 받은 달라이라마는 89년 노벨평화상 수상을 전후해 무력항쟁을 불러오는 티벳의 자주독립 요구를 버렸다.

―어떻게 하면 무지와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허허허 웃으며 아주 좋은 질문이라고 지적한 뒤) 무지를 없애기 위해서는 지혜의 수행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세상은 서로 의존해서, 인연에 의해 존재한다. 인연에 얽매이지 말고 궁극적인 본질을 봐야 한다. 집착을 없애기 위해서는 내가 항상 만족하고 있다는 만족의 수행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불만이나 욕심을 감소시키는 것이 만족의 수행이다.”

―현대인이 처한 당면한 문제를 풀기위해 불교가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인가.

“불교는 종교가 아니라 마음의 과학이다. 심리학의 발전이 불교의 발전에 큰 공헌을 할 것이다. 불교는 자비를 가르친다. 자비를 통해 내적인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다.”

―사이버 시대다. 사이버 세상에서 불교는 무엇인가.

“(잠깐 생각하다가) 아이 돈 노우. (한바탕 웃음, 한참후에) 불교에 보면 공간과 시간에 대한 설명이 많다.”

―건강해 보인다.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은….

“충분하게 자고, 잘 먹고, 마음의 평온을 유지하는 것이 비결이다. 어떤 사람이 한국의 인삼이 몸에 무척 좋다고 얘기하는 데 아직 맛은 보지 못했다(웃음).”

―하루일과를 말해달라.

“새벽 3시반에 잠자리에서 일어나 5시반에 아침을 먹고 8시반에 명상을 한다. 그 이후로는 사람들을 접견하고 낮 12시에 점심을 먹는다. 불교 승려로서 점심이후에는 아무 것도 먹지 않는다. 오후 6시에 예불을 드리고 그 이후에는 사람을 만나는 일정이 없는 한 공부를 한다. 밤 8시반 조금 넘어 잠을 잔다. 푹 잔다.”

<다람살라〓송평인기자>pisong@donga.com

▼티벳 수난사/50년 중국공산당이 강점-독립시위로 120만명 사망-문화혁명땐 사원 4500개 폐쇄▼

‘티벳을 억압하는 중국’이 집중적으로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달라이라마가 노벨평화상을 탄 89년 무렵이다. ‘티벳에서의 7년’이나 ‘쿤둔’ 같은 영화가 전세계에 상영되고 티벳 라마승은 유수한 다국적 회사의 인기있는 광고모델로 등장했다.

달라이라마의 수난은 중국대륙을 통일한 공산당이 50년 티벳으로 쳐들어오면서 시작됐다. ‘종교는 아편’이라고 규정한 인민군 장성들은 티벳 불교를 인정할 수 없었다. 59년 독립시위에 대한 잔혹한 진압으로 티벳 전체인구의 20%인 120만명이 사망했다. 달라이라마는 얼마후 중국정부로부터 경극(京劇)관람에 초대받았다. 암살기도를 눈치챈 측근들의 강력한 권유로 그는 농부로 가장,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인도로 망명했다.

문화대혁명 기간동안 홍위병들에 의해 4500여개 사원이 폐쇄됐으며 수많은 티벳인이 정치적인 이유로 감옥에 갇히거나 행방불명됐다. 최근 티벳에서 망명, 다람살라에 머물고 있는 텀딩이라는 사람은 “60년 이후로도 약 20만명이 더 죽었다”고 말했다.

중국정부는 궁극적으로 달라이 라마를 대신할 종교지도자를 옹립하고 싶어하지만 계속 실패하고 있다.

달라이 라마와 달리 티벳에서 중국에 호의적인 활동을 벌이던 10대 판첸라마가 89년 심장마비로 입적하자 중국정부는 11대 환생자를 찾는 작업에 나섰다. 판첸 라마는 달라이 라마 유고시 지도력을 행사하는 2인자. 중국정부는 95년 11월 11대 판첸라마로 6세 남자아이를 뽑았지만 이보다 앞서 5월 달라이라마가 기습적으로 다른 6세 남자아이를 11대 판첸라마로 전격 발표함으로써 환생자가 2명이 되는 사상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올해는 달라이 라마가 속한 겔룩파(黃帽派)의 경쟁세력인 카르마파(黑帽派)의 수장 17대 카르마파 라마가 중국을 탈출, 다람살라에 도착했다.

카르마파 라마는 판첸 라마와 달리 중국정부와 달라이라마가 함께 권위를 인정하는 티벳내의 유일한 인물. 달라이라마가 사망하면 그를 대신할 수 있는 인물로 중국정부의 기대를 모았기 때문에 이 사건은 장쩌민(江澤民)주석 집권이래 티벳정책의 가장 큰 실패로 꼽히고 있다.

<송평인기자>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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