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대근/검찰의 ‘줄대기’

  • 입력 2000년 6월 1일 19시 30분


‘사돈의 팔촌’이란 본디 남이나 다름없는 먼 인척을 이르는 말이다. 사전적 의미대로라면 헤아려볼 필요도 없는 촌수다. 그러나 실제 우리 사회에선 그렇지가 않다. 누구나 사돈의 팔촌보다도 더 먼 촌수를 따져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우리의 ‘연(緣)줄 문화’는 그만큼 뿌리가 깊다. 혈연(血緣) 지연(地緣) 학연(學緣)…. 우리 사회에선 여전히 ‘연’을 찾아 뒷거래를 잘 하는 것이 ‘능력’으로 통한다.

▷무슨 일을 해결하기 위해 연줄을 찾는 것은 비단 개인뿐만 아니다. 기업도 평소 외부인맥을 관리하고 필요할 때 ‘보호막’으로 적극 활용한다. 임원은 물론 사원들에게도 친분이 있는 정 관계, 금융계 등의 인사를 적어 내도록 하고 이를 유기적으로 관리하고 있다는 얘기다.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국내 굴지의 재벌은 ‘인맥관리팀’을 두고 관련자료를 정리하고 있을 정도라고 한다.

▷기업의 연줄찾기는 일반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98년 국민의 정부 출범직후 한 재벌은 은행간부를 지내다 그만 둔 대통령의 처조카를 영입하려고 끈질기게 접촉했으나 청와대 비서실의 반대로 불발로 끝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재벌은 왜 그렇게 권력에 줄을 대려 했을까. 그 대답이 나오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지난해 이 재벌은 국세청의 세무조사를 받았다. 세무조사를 예감하고 사전에 이를 막기 위해 연줄을 찾은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결과적으로 그런 해석을 낳은 셈이다.

▷대검이 16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전국의 일선검사에게 친분이 있는 국회의원을 적어내도록 했다는 소식이다. 대검은 학연이나 지연 등 친분관계를 상세히 기록하도록 지시했고 일선 검사들은 이에 상당한 심리적 부담을 느낀 것으로 전해진다. 공란으로 제출하면 무능력자로 보일 것 같고 제대로 써 내자니 나중에 번거로운 일에 휘말리지 않을까 고민했다는 것이다. 대검은 “국회가 새로 구성될 때마다 의례적으로 해온 일”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그런 전근대적인 행태가 계속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닌가.

송대근<논설위원>dk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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