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주석의 옛그림 읽기]김홍도 '해탐노화도'

  • 입력 2000년 5월 30일 20시 30분


게 두 마리가 갈대꽃 송이를 꼭 끌어안았다. 행여 놓칠세라 집게까지 열 개의 다리가 제각기 분주하게 어기적거리는데, 그 와중에 윗 놈은 그만 흰 배를 드러낸 채 뒤로 자빠졌다. 게가 갈대꽃 먹는다는 얘기는 들어보질 못했는데 어쩐 일로 저리도 부산할까? 이 그림에는 뜻밖의 우의(寓意)가 숨어 있다. 한자로 갈대는 로(蘆)인데 이것이 옛 중국 발음으로는 려와 매우 비슷하다. 려는 원래 임금이 과거 급제자에게 나누어주는 고기 음식이다.

▼장원급제 기원하는 의미 담겨▼

그 뜻이 확대되어 전려 혹은 여전이라고 하면 궁중에서 과거 합격자를 호명해서 들어오게 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니까 게 두 마리가 갈대꽃을 물은 것은 소과(小科) 대과(大科) 두 차례 시험에 모두 합격하라는 뜻이요, 꼭 잡고 있는 것은 확실하게 붙으라는 의미다. 그 뿐이랴? 게는 등에 딱딱한 껍질을 이고 사는 동물이니 그 딱지는 한자로 갑(甲)이 된다. 이 갑은 천간(天干) 즉,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 중의 첫 번 째니까 바로 장원급제를 의미한다. 참 욕심도 많다. 과거에 붙어도 소과 대과를 연달아 붙되 그것도 꼭 장원으로만 붙으라는 것이다. 이렇게 듣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상서로운 상징을 지녔으므로 ‘게가 갈대꽃을 탐하는 그림(蟹貪蘆花圖)’은 과거시험을 앞둔 사람에게 그려주기 마련이다.

그림에 담긴 뜻이 호탕하니 화법(畵法)도 시원시원할 수밖에 없다. 우선 모든 필획을 중간치 붓으로 단번에 휘둘러 그렸는데 윤곽선이 따로 없는 이같은 화법을 몰골법(沒骨法)이라 한다.

▼'품성대로 올곧게 살라' 교훈▼

원래 게란 뼈가 없는데 그림에 윤곽선이 없는 화법도 ‘뼈가 없다’고 하니 기억하기 쉽다. 화가는 맨 처음 갈대꽃을 그린 다음에 활달하고 간략한 붓질로 두 마리 게를 척척 그려내었다. 그 다음 위쪽 갈댓잎부터 치고, 둘째로는 내려긋고, 마지막에는 교차해서 비스듬히 그었다. 아! 그러고 보니 첫째 이파리가 아무래도 좀 짧은 듯하다. 세 번째 이파리 긋던 붓을 들어 첫째 잎에 덧대 좀더 길게 빼본다. 딱 보기 좋게 되었다.

끝으로 화제(畵題)를 쓸 차례다. 단원은 정말 속이 다 시원해지는 후련한 필치의 행서로 ‘海龍王處也橫行(해룡왕처야횡행)’이라고 썼다. ‘바다 속 용왕님 계신 곳에서도 나는야 옆으로 걷는다!’ 과거시험은 끝이 아니다. 이제부터가 참된 시작이다. 정신 차리고 하늘이 내려준 품성대로 똑 바로 살아야 되지 않겠는가? 권력 앞에서 쭈뼛거리지 말고, 천성을 어그러뜨리지 말고, 되지 않게 앞으로 버정거리며 이상하게 걷을 것이 아니라, 제 모습 생긴 대로 옆으로 모름지기 삐딱하게 걸을 것이다. 정문일침(頂門一針)! 참으로 뼈가 선 한마디다. 그렇다. 선비의 길은 자연의 길이다.

오주석(중앙대 겸임교수) josoh@unite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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