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랍 휴스 칼럼]삼바축구 이유있는 고전

  • 입력 2000년 5월 30일 19시 47분


서울시청에 걸린 대형 전광판 시계가 정확히 2002월드컵과 98프랑스월드컵의 중간 지점을 통과하고 있다. 나 역시 분침의 이동과 함께 가슴이 벅차오르고 있다. 2002년 월드컵을 향해 치닫고 있는 유럽과 남미 등 전세계의 고동치는 맥박 소리를 한국 독자들에게 생생히 전달해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이다.

일주일 전 98프랑스월드컵이 대단원의 막을 내린 파리 인근 스타드 드 프랑스 경기장에서 한 선수가 마치 영감을 받은 듯 질주하고 있었다. 호베르투 카를로스. 그는 물론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축구 풀백이다.

카를로스는 너무도 작지만 너무도 빠르다. 축구 선수에게 중요한 것은 체격이 아니라 ‘심장’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입증하고 있다. 그는 이날 그의 조국 브라질이 프랑스에 월드컵을 뺏겼던 바로 그 현장에서 소속팀 레알 마드리드에 유럽챔피언스리그 우승컵을 바쳤다. 2년 전의 뜨거운 눈물이 이날 승리의 기쁨에 흩날려 사라진 것이다. 카를로스의 상처는 브라질인들이 그렇듯 시간이 치유했다.

냉소적인 비판가들이 축구 용병에 대해 무슨 말을 하든 한가지만은 분명하다. 카를로스에게는 그라운드에서 플레이와 승리, 그리고 거침없는 공격력을 펼쳐 보이는 것이 레알 마드리드 선수 전원이 챔피언스리그 우승 보너스로 25만파운드(약 4억1700만원)씩 받은 것보다 훨씬 소중한 것이었다. 나아가 월드컵 무대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카를로스에게는 행운이 따른다.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패배를 겸허히 받아들인다. 그는 이번 일요일 브라질을 응원하는 드럼소리가 스탠드를 가득 메울 페루의 리마로 간다. 브라질과 페루는 이날 월드컵 남미 예선전을 치른다.

쉽지는 않을 것이다. 이달, 다음달, 매달 남미의 정상급 강호 10개국은 풀리그로 2002년 월드컵 본선 티켓을 다툰다. 이 중 네 나라만 본선에 직행할 수 있다. 노랑 초록 파랑으로 대표되는 브라질이 없는 월드컵은 상상도 할 수 없다. 그러나 단언컨대 브라질인들은 우려가 앞선다. 브라질은 지금까지 두 번의 예선전을 치렀는데 콜롬비아와는 0-0으로 비겼고 홈에서 열린 에콰도르전에서는 고전 끝에 3-2로 간신히 이겼다.

왜 브라질은 그토록 우수한 선수를 많이 갖고도 가끔 고전을 할 수밖에 없는가. 바로 그들 역시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너무도 상업성에 휘둘려 과로하고 있기 때문이다. 98프랑스월드컵 결승전 이후 브라질은 전세계 어느 나라보다 많은 항공마일리지를 쌓았고 여러 대륙에 얼굴을 내밀었다.

이번 일요일 경기는 브라질이 프랑스월드컵 결승전 이후 29번째 치르는 대표팀간 국제경기다. 미국의 스포츠웨어 회사인 한 기업이 브라질축구협회에 엄청난 돈을 지원하는 대신 전세계 클럽에서 활약하고 있는 모든 브라질 스타를 소집하고 있다. 돈을 지불하는 그 후원사의 요구에 따라 브라질팀은 움직인다.

심신이 극도로 지친 호나우두가 프랑스월드컵 결승전에 출전한 것도 스폰서의 ‘압력’ 때문이었다. 엄청난 부와 재능을 갖고 있으면서도 불쌍한 호나우두….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스트라이커인 그는 우리 눈앞에서 ‘총 맞은 야생 코끼리’처럼 쓰러졌다. 그는 아직 무릎 부상에서 회복하지 못했고 아마도 영원히 회복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 덕에 히바우두가 세계 최고가 됐다. 그러나 최근에 히바우두를 본 적이 있는가? 수척하고 지쳐 보인다. 자신의 조국보다 훨씬 부유한 이국에서 돈을 벌고 있는 호나우두나 카를로스나 나머지 모든 300명의 브라질 선수들처럼 히바우두는 자신의 꿈 이상으로 부유하게 됐다. 그러나 돈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월드컵 예선에 참가하는 나라는 모두 197개국. 아프리카와 카리브해 일부 국가는 벌써 중도 탈락했다. 나는 지금으로서는 내 조국 잉글랜드에 단 한푼도 걸지 않겠다. 하물며 결승진출이야. 우리는 내년 9월 시작하는 예선 라운드에서 독일과 맞붙어야 한다. 솔직히 말해 나로서는 잉글랜드가 본선에 진출하지 못해도 유감스러울 뿐이지 결코 놀라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만약 브라질이 본선에 진출하지 못한다면 나는 독자 여러분과 마찬가지로 ‘배신감’을 느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미에서는 예측 불가능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 브라질보다는 아르헨티나가 현재 가장 강력한 전력을 구축하고 있다. 아울러 남미에서는 네 팀만이 곧바로 본선에 진출하지만 강팀이건 약팀이건 모든 나라가 브라질만 깨면 역사적인 성취라며 ‘타도 브라질’을 외치고 있다. 그게 바로 히바우두나 호나우두 또는 호마리우가 짊어져야 하는 숙명이다. 우리 모두는 그들의 기술을 사랑한다. 그러나 그들은 바로 그 명성 때문에 축구가 의미하는 모든 한계선에서 휘청거리고 있다.

<정리=배극인기자>bae215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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