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성호/준법운동 '위'부터 작은 일부터

  • 입력 2000년 5월 18일 19시 29분


선진국이 후진국과 구별되는 것 중의 하나는 사회계층의 위로 올라갈수록 깨끗하고 준법정신이 강하다는 것이다. 경제지수로는 선진국 문턱에 진입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우리사회의 ‘준법지수’는 후진국 수준을 면치 못하고 있다.

시민들이 법을 지키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법이 제대로 정비돼야 한다. 더 이상 ‘악법도 법이니까 지켜야 한다’는 식으로 우격다짐을 해서는 안된다. 건전한 시민의 상식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불합리한 법을 만들어놓고 무조건 이를 지키고 따라야 한다는 권위주의적이고 관료주의적인 법체제가 바뀌지 않으면 어떤 형태의 준법운동도 성공을 거두기 어렵다.

법의 형평성 문제도 새롭게 해석해야 한다. 형평성은 결코 모든 것을 계량적으로 균등화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어떤 고위 공직자가 받은 뇌물이 100만원이고 어떤 근로자가 받은 부당한 돈이 100만원이라면 그것을 계량적으로만 똑같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들에게 똑같은 비중의 죄를 물을 수 있겠는가. 고위공직자나 사회지도층은 단돈 100원을 뇌물로 받았더라도 보통 사람들이 부당하게 1000만원을 받은 것 이상으로 도덕적으로나 법률적으로 엄격하게 죄를 물어야 그것이 진정한 형평성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은 거꾸로인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모든 국민이 법을 지키자는 운동은 윗사람들이 보통사람들을 교육시켜 성취하려고 해서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위에 있는 사람들이 분명히 알아두어야 할 것은 우리 국민의 지력이 결코 낮지 않다는 것이다. 그들이 비록 표현에서 다소 서툴지는 몰라도 어떤 일의 옳고 그름을 생각하고 판단하는 예지력과 사고력은 위에 계신 높은 사람들 못지 않다.

그럼에도 그동안 우리는 어떤 운동을 한다고 하면 선한 국민을 계도하고 교육시키는 일만으로 운동을 펼쳐 실패한 경험이 많다. 중요한 것은 위에 있는 지도층 인사들이 국민을 교육시키려 들지 말고, 오히려 그들 먼저 법을 철저하게 지키는 시범을 보일 수 있어야만 준법운동은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법을 잘 지키지 않는 사회가 된 것은 ‘법을 지켜보아야 나만 손해’라는 인식을 심어준 ‘윗물’에 일차적으로 책임이 있다.

준법운동은 일상 생활의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되어야만 성공을 거둘 수 있다.

예컨대 운전을 할 때 차로 바꾸기나 주차를 도로교통법에 정해진 대로 한다든가, 상거래를 보고할 때 사실대로 보고하는 일과 같은 일상생활의 지극히 작은 일에서부터 준법정신을 발휘하여야 한다. 법을 지키는 일은 결코 큰 일을 수행할 때만 적용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일상생활 속에서의 법을 지키는 운동이 사회의 모든 부문에서, 또 모든 기관에서, 그리고 모든 계층의 국민에게서 확산되어 나갈 수 있는 방법으로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법무부가 새천년 준법풍토의 확립을 역점 시책으로 밝히면서 범국민 준법운동 추진본부를 구성했다. 이를 두고 ‘관에서 무슨 그런 운동을 주도하느냐’ ‘이 운동 역시 전시행정적인 운동의 하나가 아니겠느냐’ 하는 냉소적인 비판도 나온다. 누가 추진하든 간에 준법운동이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시민의 자발적 동의를 받을 수 있는 기본적인 전제조건을 갖춰야 한다.

이번에 ‘교통법규, 저부터 지킵니다’라는 문안의 차량스티커를 장차관들을 비롯한 4급이상 고위공무원 7000여 명부터 우선 부착하고 시민들의 감시를 받겠다고 선언한 것은 참신한 발상으로 여겨진다. ‘작은 것부터, 위부터’ 솔선수범하면서 점차 전공무원과 일반시민으로까지 확대돼야만 준법의식이 우리 사회에 뿌리내릴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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