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새영화]'백치들',바보처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절규

  • 입력 2000년 5월 18일 19시 29분


1998년 칸 국제영화제의 화제작이었던 ‘백치들’은 바보를 자처하며 중산층의 가치를 조롱하는 젊은이들의 위악을 그린 도발적인 영화다.

‘유로파’ ‘브레이킹 더 웨이브’ 등으로 탁월한 스타일리스트임을 입증하며 거장의 반열에 오른 라스 폰 트리에 감독(덴마크)의 이 영화는 형식의 극단적 실험처럼 보인다. 상업적 조작과 작가주의를 거부하는 도그마 선언(1995년)에 기초해 만들어진 이 영화는 시종일관 카메라를 들고 찍은 탓에 어지러울 정도로 화면이 흔들리고 거칠다.

아들을 잃은 카렌(보딜 요르겐센 분)은 우연히 만난 스토퍼(얀스 알비너스) 일행에 이끌려 의도적인 바보짓을 하는 젊은이들의 기이한 공동체와 어울리게 된다. 이들은 역겨운 행동으로 사회를 뒤집어 놓으며 저항의 카타르시스를 맛본다.

도발적인 이들의 행동에 관객이 선뜻 동의하긴 어렵지만, 완전한 바보로 사는 데에 실패한 공동체의 자기 분열과 도중에 삽입된 후일담같은 인터뷰들에는 살기 위해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쓸쓸함이 묻어 난다. 그러나 여기서도 기존 질서의 완강함보다는 무턱대고 저항하다 제풀에 지쳐 절망하는 엘리트들의 유아적 낭만성이 더 두드러진다.

이들 중 가족 앞에서도 바보짓을 하는 데에 성공하는 유일한 사람은 아들을 잃은 가난한 여인 카렌뿐. “어떻게 장애인들 앞에서 바보짓을 하느냐”며 관객이 느낄 거부감을 대변하던 카렌이 바보짓을 하는 마지막 장면은 정말 슬프다. 그 이유는 그의 바보짓이 엘리트들의 위악적인 장난과 달리,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자기를 버리는 처절한 자기 부정이기 때문이다. 18세 이상 관람가. 20일 개봉.

<김희경기자>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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