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월드]유로貨 폭락 英-獨 희비 엇갈려

  • 입력 2000년 5월 17일 19시 34분


유럽연합(EU)의 단일통화인 유로화가 지난해 1월 1일 출범 이후 가치가 크게 떨어지면서이해 당사자들의 명암이 크게 엇갈리고 있다.

미국 달러화 가치 강세에 힘입어 유럽 여행길에 나서는 미국인이 급증했다. 유로권 국가들의 대형 제조업체와 수출업자들은 유로화 가치하락이 수출증대에 ‘효자노릇’을 한다고 반기고 있다.

반면 유로권 정치지도자들과 EU집행위는 유로화 가치 추락이 장기적으로 인플레 압력을 높이고 수입품 가격을 올려 유럽 경제를 주름지게 하고 유럽통합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출범 17개월 만에 유로화 가치는 달러화에 대해 25%, 일본 엔화에 대해 26% 떨어졌다.

국제 외환시장에서 유로당 0.90달러 안팎에서 거래된다. 미국이 16일 연방기금 금리를 0.5%포인트 또 인상했고 내달에도 다시 금리를 올릴 전망이어서 유로화 가치 반등은 당분간 기대하기 어렵다.

▽유럽 경제에 미친 영향〓유럽에서 수출 의존도가 가장 높은 독일은 유로가치 급락의 부수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도 “수출붐을 타고 4월에 독일 실업자수가 400만명 아래로 떨어졌다”고 인정할 정도.

독일 수출업협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2월 중 독일의 대미 수출이 작년 동월 대비 40%, 대 영국 수출이 26%가 뛰었다. 최근 1년 사이 수출은 20%가 늘었다.

미국에서 팔리는 독일 자동차 가격은 수개월 사이 25%가 떨어졌다. 포드 자동차, 모토롤라, IBM 등 미국 회사들은 생산비가 미국 영국 일본 등에 비해 현격하게 싼 독일 현지법인에 자금 투자를 늘리고 있다.

유로권 외의 국가에 대한 수출물량이 많은 독일과 이탈리아는 유로 약세에 따른 수출 증대 효과가 크다. 반면 유로에 가입하지 않고 있는 영국은 파운드화 가치가 상대적으로 강해지면서 제조업이 막대한 타격을 입고 있다고 걱정하고 있다.

▽관광업계의 때 아닌 호황〓요즘 프랑스 파리 에펠탑 주변과 샹젤리제 거리에 가면 미국 의 지방색이 완연한 영어를 곳곳에서 들을 수 있다. 달러를 프랑이나 마르크화 등 유로에 연동돼 있는 유로권 국가의 돈으로 바꾸면 예년의 125%를 받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바캉스 시즌이 아닌데도 미국 시골사람들의 유럽관광 행렬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유럽 여행자협회는 “올해 유로권 국가를 방문할 미국인은 1200여만명으로 지난해의 1160만명 기록을 깰 것”이라고 밝혔다.

샤넬과 에르메스 로고가 들어간 고급 수첩이 샌프란시스코에서는 400달러지만 프랑스 현지 부티크에서는 240달러에 해당하는 프랑화로 살 수 있다. 지난해 하룻밤 100달러였던 뮌헨의 호텔 숙박료가 요즘은 78달러 정도다.

미국인들이 더욱 기뻐하는 것은 고급 식당의 대명사인 파리 미슐랭 레스토랑의 1인당 850프랑짜리 저녁식사가 지난해에는 150달러에 해당했지만 지금은 118달러면 뒤집어쓴다는 것.

영국 등 유럽 지역의 관광객들도 입장료가 상대적으로 비싼 미국 디즈니랜드 대신 프랑스 파리 근교 마른라발레의 유로디즈니를 찾고 있다.

▽유로권 국가들의 대응〓유로화 가치가 유로당 0.90달러 아래로 떨어지자 유로권 11개국 재무장관들은 8일 브뤼셀에서 급히 만났다. 유로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재정금융개혁을 가속화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각국 정부의 직접적인 시장 개입은 논의하지 않은데다 ECB가 금리인상 등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자 시장에서의 유로 가치는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유로화를 이끄는 독일, 프랑스의 정상과 경제 각료들은 19일 파리 근교 랑부예에서 만나유로화 가치 부양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논의한다.

그러나 세계의 자금은 유럽보다 훨씬 금리가 높은 미국으로 집중될 것이며 미국과 일본이 유로화 가치부양을 적극적으로 도와줄 태세도 아니어서 유로화의 강세 전환은 당분간 현실화되지 않을 전망이다.

<파리〓김세원특파원> clair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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