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크루그먼 칼럼]日 경제 '기술 환상'서 깨어나라

  • 입력 2000년 5월 14일 19시 29분


지난주 일본 닛케이 주가지수가 9% 하락했다. 요즘 일본은 물론 어디에서든 주가지수의 등락에 지나친 의미를 두는 것은 잘못이지만 이번 주가하락만큼은 다르다. 그것은 일본 정부의 경제전략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세계 주요국 가운데 특이하게 2000년대가 열렸는데도 1930년대식 경제를 재창출해왔다. 소비자와 기업이 모두 쓸 만큼 쓰지 않기 때문에 이 나라의 거대한 생산능력이 사용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일본은행은 수요를 진작하려고 거의 0%까지 금리를 낮췄지만 경제는 불경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중앙銀 통화정책 포기▼

일본은 평화 시기에 어떤 나라도 하지 못한 규모로 엄청나게 재정지출을 늘려 경제의 추락을 막아왔다. 그래서 전면적인 불경기는 피했지만 언제까지 그런 식으로 지출할 수 있을까.

나를 포함한 서구 경제학자들은 적자를 두려워 않는 재정지출만 할 것이 아니라 공격적인 통화정책을 취해야 한다고 일본에 촉구해왔다. 일본은행은 최근의 지루하게 계속해왔던 통화수축정책을 접고 다소간 통화팽창정책을 취하겠다고 공언해야 한다. 그러나 일본은행은 이를 거부했을 뿐만 아니라 일본은행 총재는 “금리를 가능한 한 빨리 올리겠다”는 말을 되풀이하고 있다. 도대체 무슨 계획을 갖고 있는 것일까.

▼'기술로 수요 창출' 낙관▼

그동안 성급하게 경제적인 성공을 자축해온 일본 관리들은 ‘자급자족형 경제회복’을 주장해왔다. 그것은 희망사항이지 정책은 아니다. 대규모 재정지출로 민간부문 소비를 진작한 뒤 차례로 기업의 경제에 대한 신뢰를 회복시키는 방법을 써 왔기 때문에 일본 경제가 정부의 재정지출 없이도 성장하리라고 기대하기는 힘들다.

최근에는 낙관론자들이 ‘기술 예찬론’을 들고 나왔다. 기술의 신경제가 일본에 도래해 생산성을 대폭 상승시키고 수요를 창출하리라는 것이다. 기업들은 수조엔을 신장비 구입에 투자할 것이며 기술주의 주가상승으로 부자가 된 개인 투자자들이 사치품에 돈을 쓰는 등 ‘고통의 시절’이 끝날 것이라는 얘기다.

▼정부 재정적자 눈덩이▼

미국에서는 기술주 주가폭락이 경기과열에 대한 우려를 감소시킴으로써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일감을 한결 덜어줬다. 반면 이런 주가폭락이 일본에서는 불길한 전조가 된다.

얼마나 일본의 기술이 좋은지는 몰라도 기술에 의존해 경제를 회복하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다. 일본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있다. 전혀 진정될 기미가 없는 경제적 불안과 지속하기 어려운 규모의 재정 지출. 이렇게 한해 두해가 지나가면서 정부의 재정적자폭은 30조엔에 이르렀다.

슬픈 얘기다. 기술은 신비로운 약이 아니다. 누구나 인터넷과 무선전화기의 첨단기술에 매료될 수는 있겠지만 이것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들은 곧 실망할 수밖에 없다.

<정리〓홍은택기자> eunta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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