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정말 수사할 것 없나

  • 입력 2000년 5월 9일 19시 54분


린다 김 로비의혹사건의 재수사를 거듭 촉구해온 우리는 “수사할 것이 없다”는 검찰의 결론적 입장에 동의하기 어렵다. 정관계 유력인사들을 상대로 한 린다 김의 로비의혹이 일주일전 대서특필된 이래 그동안 이 사건을 둘러싼 많은 의문들이 제기됐다. 사건의 본질문제와 직접 관련이 없는 사생활 영역은 그렇다해도 의혹의 핵심인 ‘린다 김의 로비와 백두사업 업체 선정의 상관관계’마저 규명하지 않은 채 넘어갈 수는 없다.

더욱이 현정권 출범후인 98,99년에 걸쳐 군수사당국이 린다 김의 통화내용 감청과 계좌추적, 관련자들의 진술 등을 통해 그녀의 ‘전방위 불법로비’사실을 확인했는데도 어찌된 일인지 수사가 중단됐다는 보도다. 로비 대상은 정관계의 고위인사들이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수사단서가 없다”는 검찰의 말은 수사회피를 위한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미국의 기관원이라는 한 재미동포 남자가 이양호(李養鎬)전국방장관에게 문제의 연서(戀書)를 내보이며 거액을 요구한 일이 있다는 새 얘기도 보도됐다. 이러한 협박이 실제 있었다면 린다 김 로비의혹사건과는 어떤 관련이 있느냐 하는 점도 밝혀져야 할 사항이다.

검찰은 그동안 “단서가 나타나면…” “뇌물수수의 증거가 있다면…”이라는 조건부 수사원칙을 견지해 왔다. 이렇게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오던 검찰이 그저께는 마침내 “수사할 것이 없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검찰이 미리 정해진 수순을 밟아온 게 아니냐는 의혹을 살 만하다. 심지어 이전장관이 린다 김과 두차례의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다고 시인한 것도 단순 스캔들로 몰고가려는 당국의 속셈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마저 있다.

이번 사건의 본질은 여성 로비스트와 유력인사들의 스캔들이 아니다. 이 나라 국방을 책임진 국방장관 등이 무기거래 로비스트와 ‘부적절한 관계’를 가진 의혹이 있다는 점은 공직자의 도덕성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적과 싸울 무기의 선정이 불법로비에 의해 좌우됐다면 국기(國基)가 걸린 사건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주된 관심은 린다 김이 로비를 돈으로 했느냐, ‘부적절한 관계’로 했느냐에 있지 않다. 어떤 수단에 의하든 로비가 백두사업 업체 선정에 영향을 미쳤느냐 여부가 중요한 것이다.

김영삼(金泳三)정부시절 한 기무사령관의 증언 등 지금까지 제시된 관계자 진술과 자료만으로도 수사단서는 충분하다고 본다. 검찰의 현명한 판단을 다시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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