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韓美行協 개정 왜 안되나

  • 입력 2000년 4월 30일 20시 35분


살인혐의로 한국 법원의 재판을 받아야 할 주한미군병사가 미군당국의 신병관리 소홀을 틈타 탈주했다가 붙잡힌 사건은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의 문제점을 다시 한번 드러냈다. 중범죄 용의자를 일반 외국인의 경우와 달리 한국의 형사법 절차대로 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SOFA가 그렇게 규정해 놓았기 때문이다.

약칭 한미행정협정이라 불리는 SOFA는 1966년 체결될 당시부터 한국쪽에 불리한 조항들이 많이 포함된 조약이었다. 중요한 것만 꼽아도 미군 범죄혐의자에 대한 수사 및 재판권의 전면적 포기, 국유시설에 대한 미군의 무상사용권, 한국인 노무원에 대한 미군측의 자율해고권 등이 그것이다.

서로 주권을 존중하고 대등한 관계에 기반을 둬야 할 국가사이의 조약치고는 보기 드문 불평등협정으로 출발한 것이다. 한국이 그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주한미군이 한국의 안보를 위해 와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후 두나라의 외교 및 국방당국은 수차례에 걸쳐 SOFA 개정협상을 벌여왔으며 그 결과 이 협정을 부분적으로 다듬은 것도 사실이다. 대표적인 불평등 조항으로 지적돼 온 미군 범죄혐의자에 대한 재판관할권을 한국측이 갖도록 고쳤다. 하지만 재판에서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데 필수적인 수사권과 형이 확정되기 전의 신병관리권이 아직도 미군당국의 수중에 있어서 문제다.

유럽주둔 미군이나 주일미군의 경우 살인 강도 강간 같은 중범죄인은 기소 이전 단계에서 주둔국 검찰에 신병을 넘겨주게 돼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어떤 중범죄인도 형이 확정되기 전까지 미군이 신병을 관리한다.

이에 대해 주한미군 당국은 미군 주둔의 성격과 한국 구치소의 시설, 한국 수사기관의 수사관행 등이 다른 나라와 차이가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것은 미군의 역할에 대한 근시안적 해석이며 한국 사법제도의 폄훼가 아닐 수 없다.

이번 미군 살인혐의자 탈주 사건을 계기로 SOFA 개정이 시급하다는 국민여론이 다시 끓어오르고 있다. 우리 정부는 형사관할권 외에 주한미군부대의 환경오염에 대한 규제권 등도 협정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한미 외교부장관과 국방부장관은 지난 3월 SOFA의 개정협상을 시작하기로 구두 합의했으나 구체적인 일정협의가 늦어지고 있다. 정부는 시대에 뒤떨어지고 불합리한 SOFA 개정협상에 미국측이 응해 오도록 좀더 강력히 촉구해야 한다. 두 나라 관계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서도 개정협상은 서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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