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Business]빌 게이츠 "자선사업 하기 어렵네요"

  • 입력 2000년 4월 20일 19시 59분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은 지난 1월에 영국의 웰컴 트러스트를 제치고 세계 최대의 자선재단이 되었다.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의 자산은 현재 218억 달러이다. 실질적인 가치를 따져서 계산했을 때, 올해 44세인 빌 게이츠가 자선사업에 내놓고 있는 돈은 과거의 위대한 자선사업가들이 평생에 걸쳐 내놓은 돈보다 많다.

▼자산 218억달러 세계 최대▼

그러나 빌이 마이크로소프트의 시장독점 재판이 불리하게 진행되고 있던 지난 14개월 동안 이 재단에 엄청난 돈을 더 내놓았다는 사실 때문에 일부에서는 게이츠의 자선사업이 대중홍보작전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게이츠는 카네기처럼 자신도 죽기 전에 재산의 대부분을 사회에 내놓을 것이라고 항상 말하곤 했다. 자식들에게 엄청난 재산의 부담을 안겨주고 싶지 않기 때문에 적당한 액수의 돈만 남겨줄 예정이라는 것이다.

은행가인 J P 모건은 사람이 어떤 일을 하는 데는 대외적으로 훌륭한 명분과 진짜 이유라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말했다. 예상대로 빌은 자선사업을 하게 된 진짜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정확한 답변을 하지 않았다. 사실 빌에게 자선사업을 하도록 권유했던 바탄 그레고리안의 주장처럼 이유 같은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빌이 벌이고 있는 자선사업 자체이다.

▼친구-아버지가 재단 운영▼

현재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의 운영을 맡고 있는 것은 빌의 친구이자 마이크로소프트 전중역인 패티 스톤사이퍼와 빌의 아버지 윌리엄 게이츠이다. 빌과 그의 아내 멜린다도 재단의 운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빌은 자선사업에도 많은 시간과 독창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자신은 이제야 자선사업에 대해 배우기 시작한 입장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가 내놓은 엄청난 출연금과 그의 명성 덕분에 그의 재단은 운영 프로그램들뿐 만 아니라 자선사업에 대한 미국인들의 인식과 공공정책, 그리고 다른 부자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이 자리잡고 있는 시애틀에서 스톤사이퍼와 빌은 유명인사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을 알아보는 사람들을 피해 숨기보다는 자유롭게 영화도 보고, 식당에도 가는 편을 택한다. 그럴 때면 사람들은 스톤사이퍼에게 다가와 자선금이나 연구기금 등을 받기 위해 애를 쓴다. 기사를 쓰면서 평소 스톤사이퍼가 어떤 요구들에 시달리는지 직접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우선 뉴욕의 다섯개 연구기관들이 빌 게이츠의 재단에 제출한 자신들의 연구기금 요청에 대해 잘 좀 써달라고 부탁했다. 어린이 농구팀의 코치를 맡고 있는 TV 프로듀서는 빌에게 어린이 선수들의 유니폼을 마련해줄 의향이 없는지 물어봐 달라고 했다. 이런 요청들을 전해들은 빌은 큰 소리로 웃으면서 자본주의는 정말 이상한 것이라고 말했다. 많은 돈을 갖고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세계 보건환경 개선 관심▼

빌이 자선사업과 관련해서 현재 가장 커다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전세계 보건분야의 불평등을 바로잡는 것이다. 세계 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인류의 90%를 괴롭히고 있는 질병의 연구에 사용되는 돈은 전체 의학연구기금의 10%가 채 되지 않는다. 제약회사들은 약을 살 돈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약을 만들지 않는다. 또 가난한 나라에서는 매년 수백만 명의 어린이들이 백신으로 쉽게 예방할 수 있는 질병으로 죽어가고 있다. 따라서 게이츠 재단은 최근 백신접종을 위한 세계연합이라는 단체를 통해 개도국에 약품을 전달해주는 비용으로 7억5000만 달러를 내놓았다.

빌은 멜린다와 결혼하던 해인 1994년에 첫 번째 재단을 설립했다. 결혼식 전날에 있었던 점심 모임에서 시애틀의 유명한 시민 지도자였던 빌의 어머니 메리가 예비부부에게 많은 것을 받은 사람은 또한 많은 것을 내놓아야 한다는 내용의 글을 읽어주었다고 한다. 멜린다 역시 빌이 마이크로소프트사 밖의 세상으로 눈을 돌리는 데 커다란 역할을 했다.

빌은 1997년에 컴퓨터 문명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두 번째 재단을 설립하고 스톤사이퍼에게 운영을 맡겼다. 태평양 북서연안 지역의 보건문제를 다루는 첫 번째 재단의 운영은 빌의 아버지가 맡고 있었다.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은 작년에 이 두 재단을 합쳐 만든 것이다.

그러나 빌의 재단이 미국 국내에서 벌이고 있는 사업은 찬사보다 오히려 비판을 받는 경우가 더 많았다. 지난해 9월 이 재단이 소수민족 학생들의 대학교육을 위해 10억 달러를 내놓겠다고 발표하자, 보수적인 잡지인 ‘위클리 스탠더드’에서 소수민족 우대정책에 반하는 최근 법원 판결들을 교묘하게 가리기 위한 책략이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소프트웨어를 무료로 제공해서 공공 도서관들을 컴퓨터로 연결하는 프로그램 역시 마이크로소프트의 시장을 넓히려는 술책이라고 비판을 받았다.

▼좋은 일에도 의혹의 눈초리▼

스톤사이퍼에 따르면, 빌은 이런 부정적인 반응 앞에서도 자신의 계획을 그대로 밀고 나갔다. 그러나 빌과 멜린다가 이런 반응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스톤사이퍼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빌과 멜린다도 자기들이 하는 일이 좋은 일이라는 평가를 받기를 원한다”면서 “모든 사람들이 처음 자선사업을 할 때는 자기가 잘 아는 분야부터 시작하므로, 빌이 기술 관련 프로젝트를 먼저 시작한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사실 게이츠 재단이 갖고 있는 것처럼 엄청나게 많은 돈을 꼭 필요한 곳에 잘 나눠주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때로는 좋은 의도로 내놓은 돈이 정말로 뜻하지 않은 결과를 불러오는 경우도 있다. 투자 전문가인 리처드 길더는 “자선사업의 첫째 법칙은 의학에서와 마찬가지로 ‘상대방에게 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http://www.nytimes.com/library/magazine/home/20000416mag-foundation.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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