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 인 북]'체코 양심' 하벨 "정치를 도덕위에 세워라"

  • 입력 2000년 4월 14일 19시 42분


▼'실천도덕으로서의 정치' 박영신 지음/연세대출판부 펴냄▼

“정치와 도덕이 별개로 떨어져 있어서는 안 되며 이 둘을 묶어 정치를 도덕 위에 세워 놓야야 한다.”

너무도 당연한 이 말이 생소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도덕적 타락’을 외면하고는 살아남기 힘든 정치판의 논리가 현실정치를 지배하기 때문일 것이다.

바츨라프 하벨. 63세로 투병중인 그는 이 ‘타락의 논리’를 이겨내고 신화적인 ‘체코의 양심’으로 남아 있다. 공산체제 하의 반체제 극작가였던 그는 89년 이른바 ‘벨벳혁명’을 통해 체코슬로바키아의 민주화를 주도했고 90년 대통령으로 추대된 후 변함없는 존경을 받고 있다.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인 저자는 실무경험이 전혀 없었던 하벨이 대통령이 된 후 정치판의 혼탁한 풍토에 물들지 않고 이상을 펼치고 있는 데 주목하고 그 원인을 하벨의 정치사상에서 찾는다.

하벨은 ‘공동체란 단순한 계약 이상의 무엇’이라고 주장한다. 인간은 ‘도덕적 결속’ 위에 서 있어야 하고 그 근거가 되는 양심이나 책임 같은 ‘초월성’의 에너지와 방향에 따라 삶의 세계를 만들고 지켜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삶’은 ‘체제’의 통제 밑에 들어가 인간다움을 놓치게 되기 때문이다. 공산주의 치하에서 있었던 68년 ‘프라하의 봄’도 ‘체제’와 ‘삶’이라는 두 영역의 대결에서 빚어진 것이라고 한다.

“이는 일체의 삶이 중앙의 계획과 통제에 의해 움직이는 ‘체제’에 맞서 일상의 삶에서 경험하는 ‘삶’의 영역이 서서히 움직이고 확장되면서 두 영역이 맞부딪쳐 일어난 결과였다.”

그렇다고 자본주의 정치체제가 그 해결책은 아니라고 말한다. “오늘의 자본주의 정치는 시민의 삶과 동떨어져 시민과 시민 사이의 의사소통이나 시민과 정치인 사이의 직접 대화를 더욱 어렵게 만든다”는 것이다.

하벨은 “투쟁의 과제는 인간이 자율성을 살리고 도덕이 정치를 다스리고 책임이 욕심을 제어해 인간의 공동체를 더욱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이며 그 힘은 바로 ‘초월성’에서 나온다”고 역설한다. 320쪽 9000원

<김형찬기자·철학박사>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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