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부즈맨 칼럼]임상원/선거보도 절제와 비판 돋보여

  • 입력 2000년 3월 19일 20시 38분


좋은 신문은 요즘처럼 어려운 세상에서도 우리가 기댈 수 있고 위로를 해주는 신문이다. 동아일보는 좋은 신문인가.

막스 베버는 근대사회의 특성을 ‘탈 주술화’라고 요약한 바 있다. 비단 베버뿐만 아니라 많은 사상가들이 종교로부터의 해방을 근대의 중요한 특징으로 삼았다. 그런데 현대사회의 여러 가지 제도 가운데 그래도 아직 힘을 갖고 사회를 지탱해주고 있는 기둥은 종교이다. 근대화의 역설인가? 미국사회가 하나의 예로 이야기되곤 한다. 12일 바티칸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용서의 날’ 미사를 집전하며 십자군전쟁, 종교재판, 제2차 세계대전 중 유대인 학살에 대한 침묵, 여성의 성차별 등 2000년 간의 잘못을 열거하며 용서를 구했다. 화해는 잘못에 대한 진정한 참회에서 출발한다.

동아일보가 이 기사를 다소 소홀히 취급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뉴욕타임스는 첫날 13일에는 1면에 뉴스로, 14일에는 사설에서, 그리고 16일에는 각계의 반응을 실었다. 역사에 깊은 관심을 보인 태도가 부럽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결여된 것 중의 하나가 진정한 참회이다. 5·18때 광주의 대량학살에 대한 참회가 진정 있었는가. 호남정권의 교체로 참회가 되었는가. 일제 하 군위안부에 대한 일본의 참회를 진정 들은 일이 있는가.

교황의 참회는 이런 모든 일을 상기케 한다. 뿐만 아니라 사회적 문제와 관련해서도 주목해야 할 사건이다. 낙태와 산아제한을 반대하는 가톨릭의 입장에 교황의 여성차별에 대한 참회가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는 새로운 이슈의 하나이다. 우리 가톨릭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누가 선거를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말했는가. 이런 혼란 속에서 그래도 동아일보는 ‘절제와 비판’이라는 저널리즘의 덕목을 잃지 않고 있다. 우리 언론의 관행인 경마식 선거보도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여론조사에 매달리지 않는 것에서 ‘절제’의 덕목을 읽는다. 16일자 A4면 ‘여론조사의 힘’은 여론조사가 선거에 미치는 좋지 않은 영향을 환기시키고 경마식 보도의 문제를 성찰케 한다. 선거보도에서 대부분의 언론이 각 정당이 제기하는 이슈에만 매몰되는 일은 경계해야 할 편의주의이다. 형해화(形骸化)된 관념적인 구호, 긴장감도 없고 가슴에 와 닿는 것도 없는 상투적인 이야기는 이제 그만 읽고 싶다. 좀 다른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13일 A1면 ‘얻어맞는 선관위…’와 A3면의 관련기사, 특히 15일자 1면 머릿기사인 ‘사설연 사전운동 온상’은 단순한 정당이 제공한 선거기사가 아닌, 그러나 심각한 우리사회의 병리현상을 취재보도한 성공적인 기사로 꼽힌다.

17일 A4, A5 양면에 걸친 여야 총선공약 총 점검 역시 유권자의 선거에 대한 이해의 틀을 제공한 유익한 기사였다. 이와 함께 역시 17일자 중기협회장의 여당행에 대한 기사는 동아의 비판정신을 확실히 한 내용이었다. 저널리즘의 생명은 감시이고 비판이다.

임상원 (고려대 교수·신문방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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