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마라톤]투혼… 인간승리… 휴일의 마라톤 감동

  • 입력 2000년 3월 19일 19시 59분


동아서울국제마라톤이 열린 19일 서울은 ‘축제의 도시’였다.

유모차를 앞세운 젊은 부부, 아이들을 무동 태운 엄마 아빠, 할아버지를 응원하러 온 가족들이 삼삼오오 연도에 늘어서 연방 웃음꽃을 피웠다. 손을 잡고 도심을 달리는 연인들의 얼굴에는 홍조가 가득했고 휠체어로 완주에 도전하는 장애인들의 굵은 땀방울에서는 ‘불굴의 의지’가 배어나왔다.

이날 서울 하늘은 ‘인간 승리’의 투혼과 함성으로 가득 찼다.

▼ 1만여명 몸풀기 춤 한마당 ▼

○…출발지인 광화문 사거리엔 출발 3시간 전인 오전 7시부터 참가자들이 몰려들기 시작해 가족의 응원 속에 몸풀기에 몰두. 백발의 한 노인은 팔굽혀펴기로 노익장을 과시했고 대부분의 선수들이 가족으로부터 마사지를 받거나 쪼그려 뛰기, 스트레칭 등으로 다소 쌀쌀한 날씨 속에서도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

또 대회 진행자가 춤을 추며 몸을 풀 것을 제안하자 밴드의 신명나는 음악에 맞춰 가족과 참가자 등 1만여명이 함께 몸을 흔드는 장관을 연출.

○…교통 통제가 이뤄진 광진구청 앞에는 길게 늘어선 운전자들 가운데 수십명이 창문을 열고 달리는 참가자들에게 “힘내세요”라고 격려해 눈길. 몇몇 운전자는 아예 차에서 내려 응원전을 펼치기도.

한 운전자는 “상쾌한 아침 공기 속에 도심을 가르며 달리는 참가자들의 모습이 참 보기 좋다”며 “모처럼 서울에 큰 잔치가 열린 느낌”이라고 한마디.

또 15㎞ 지점인 잠실 주공아파트 앞에는 롯데월드의 마스코트인 너구리 ‘로피로리’와 마칭밴드 35명이 자발적으로 나와 음악을 연주해 신명을 돋우기도.

○…동아마라톤에 참석하기 위해 외국에서 온 사람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미국 뉴욕에서 온 브라운 유씨(53)는 출발지에서 “날씨가 쌀쌀해 기록이 좋을 것 같다”며 “이번에는 자신의 최고기록인 2시간55분의 벽을 깨겠다”고 기염.

뉴욕 한인마라톤클럽 회장이기도 한 유씨는 동아마라톤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회원 1명과 함께 4일 한국에 건너와 그동안 코스를 사전에 돌며 착실히 몸을 만들어 왔다고.

하프코스를 완주한 전하와이교민회장 임순만씨(65)는 집에서 가져온 하와이 전통화환을 머리에 쓰고 완주를 자축해 눈길. 97년 동아마라톤 때도 하프코스를 완주했고 보스턴 로테르담 등의 국제마라톤에서도 완주한 경력이 있다는 이 ‘마라톤 마니아’는 연습 도중 다리를 다쳐 그동안 출전하지 못하다가 이번에 재기에 성공했다며 기쁜 표정.

▼ 휠체어 타고 풀코스 완주 ▼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풀코스를 완주, 인간 승리의 드라마를 연출했다. 89년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안정백씨(36)는 “장애인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겠다”며 4시간13분37초만에 완주에 성공.

연세농구팀 휠체어농구단 소속인 안씨 옆에선 정상인인 농구단 코치 조성우씨(33)가 4시간여 내내 함께 휠체어를 타고 격려. 조씨는 “앞으로 장애인 휠체어 마라톤대회도 열렸으면 좋겠다”고 희망.

○…그밖에 이색 참가자들도 속출. 척추를 연구하는 의사들 모임인 대한카이로프랙틱학회 회원 20명이 각각 뼈마디 분장을 하고 한줄로 늘어서 척추모양을 만든 채 경주에 참여해 눈길. 회원들은 당초 척추뼈마디 수 24보다 4명이 모자랐지만 목뼈와 등뼈 허리뼈까지 정교하게 만들었다고 자랑하기도. 뛰지 않는 회원 20여명은 대회 의료 자원봉사요원으로 활약.

초등학교 3학년생 2명이 나란히 하프코스를 완주해 주위의 부러움을 사기도. 오민호군(10·서울 상명초등교 3년)은 아버지와 친구 윤성우군(10·상수초등교 3년) 등과 함께 하프코스를 완주한 뒤 “어려서부터 철인 3종 경기를 연습해 20㎞는 기본”이라며 즐거운 표정.

또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서 일식집을 경영한다는 문정복씨(45)는 이색적인 주방장 옷차림으로 풀코스에 도전. 하얀 요리복에 모자까지 쓰고 달린 문씨는 “마라톤은 마약 같은 것”이라고 한마디. 그가 역주를 거듭하자 연도의 시민들은 “주방장 아저씨 힘내세요”라고 응원.

○…가족단위로 참가한 사람이 많았고 긴 수염의 한 백발 노인은 하프코스를 달리며 내내 시민들로부터 박수를 유도해 화제.

코스 내내 박수를 치며 달려 시민들의 열띤 호응을 유도한 최계화씨(71)는 “세계 여러 곳의 마라톤을 뛰어봤는데 우리나라 시민들은 박수에 조금 인색한 것 같아 출발부터 박수를 유도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마디.

회사 직원들의 열렬한 응원 속에 단체로 참여한 선수들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한달 전부터 매주 일요일 일산 호수공원에 모여 맹훈련을 한 뒤 하프코스에 참가한 국민은행 노조원 90여명은 “은행 노조의 자존심을 보여주겠다”고 기염.

○…이날 풀코스를 완주한 선주성씨(35·경기 남양주시 금곡동)는 마라톤 완주자들의 모임인 서울마라톤클럽 창설멤버로 서울 강동구 성내동에서 마라톤동호인 10여명과 함께 마라톤용품점 ‘스피드칩’을 운영중인 이색인물. 마라톤이 너무 좋아 올해 초 모 신문사 편집기자직을 그만두기까지 했다고.

▼ 경찰인력 3300여명 동원 ▼

○…서울에서 열린 사상 최대 규모의 마라톤대회인 만큼 경비에 나선 경찰 인력도 국내 단일 스포츠대회 사상 최대 규모인 3300여명선. 112순찰차 52대와 견인차 5대, 구급차 10여대를 이날 대회 경비에 투입한 경찰은 대회시작 1시간 전인 오전 9시 출발장을 통제했으며 선두그룹이 통과하기 30분 전부터 구간별로 통제.

○…이번 대회에서는 동시통역회사 KNT그룹이 외국선수의 입국에서 출국까지 무료로 ‘밀착통역’해 눈길. KNT측은 대회 당일인 19일 오전 동시통역사 10명을 광화문에서 골인지점인 올림픽주경기장까지 줄곧 외국인선수들을 따라다니며 불편한 점이 없도록 배치해 큰 호응. KNT측은 내년 동아마라톤에도 가능하면 무료통역을 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대회 전날인 18일 밤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개회식에는 올해 미수(米壽)를 맞은 손기정(孫基禎)옹을 비롯한 국내외 내빈 100여명이 참석, 동아마라톤대회의 성공을 기원.

김병관(金炳琯)동아일보회장은 이날 대회사를 통해 “2년간 국내대회로 치러지다 새 천년을 맞아 다시 명실상부한 국제대회로 진행되는 이번 동아마라톤을 통해 세계의 눈은 건각들의 힘찬 발걸음과 함께 IMF위기를 이겨내고 새롭게 도약하는 한국의 모습을 지켜보게 될 것”이라고 이번 대회의 의의를 천명.

이대원(李大遠)대한육상경기연맹회장도 대회사에서 “동아마라톤은 국난을 겪을 때마다 우리 국민에게 끊임없는 불굴의 민족혼을 불어넣는 원동력이 됐다”며 “새 천년을 맞아 수도 서울의 도심을 가로지르는 코스는 우리 국민에게 희망과 도전의 정신을 일깨워줄 것”이라고 화답.

이날 행사에는 오명(吳明)동아일보사장과 보스턴 마라톤 우승자 서윤복(徐潤福)선생, 박정기(朴正基)대한육상경기연맹명예회장, 김성집(金晟集)대한체육회부회장, 윤웅섭(尹雄燮)서울지방경찰청장, 황영조 이봉주선수 등도 참석했다.

<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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