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너희중에 대통령 나와야'

  • 입력 2000년 3월 14일 19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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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金泳三) 전대통령의 재임 중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낸 김광일(金光一)전의원이 12일 부산에서 열린 민국당 집회에서 “김전대통령께서 ‘너희들(민국당 지도부)중에서 (차기)대통령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고 외쳤다. 김전의원은 ‘YS가 야당분열에 앞장선다는 비난을 받을까봐 공식적으로 말하지는 않을 뿐’이라며 안으로는 민국당을 지원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김전의원의 말이 그대로 사실이라면 참으로 기가 막히는 일이요,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YS는 평소 ‘대변인’처럼 내세워온 박종웅(朴鍾雄)의원의 입을 빌려 이런 김전의원의 말을 부인하지 않고 있다. 그런 내부적인 격려와 다짐이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반증이다. 나아가 김전의원이 “김전대통령은 부산의 몇군데 지역에 관심을 표하면서 꼭 당선시키라고 했다” “그분은 ‘오늘 민국당 대회가 열리는 수영만이 어떤 곳인지 아느냐, 거기는 과거 내가 대통령이 되는 일을 시작한 곳이다’라고도 말했다”고까지 주장하는 것으로 미루어 YS의 본심과 전후 정황을 선명하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YS는 ‘요즘 대통령까지 지낸 이가 이제와서 야당을 쪼개 지역당을 만든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그런데도 ‘민주계’에서 후계 대통령이 나와야 한다는 식의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데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전직 국가원수로서, 그리고 과거 정치의 지역분할 구도에 책임이 없지 않은 지도자로서 지역주의 극복과 국민통합에 얼마간이라도 도움이 되는 일은 하지 못할지언정 이런 식으로 품위잃은 처신을 할 수 있는가. 나라야 쪼개지건 말건 ‘내 몫의 지역당’을 거머쥐겠다는 속셈 아닌가.

YS의 이른바 ‘전언(傳言)정치’는 정치판을 더욱 어지럽게 하고 있다. 민국당 요인들의 상도동 방문을 반기면서, 그들의 입을 통해 민국당 지지를 퍼뜨린다. 그리고는 자신은 짐짓 전면에 나서지 않는 것처럼 ‘말이 부풀려 소개됐다’고 물러서곤 한다. YS는 엊그제 민국당 지도부 11인 가운데 아홉번째로 찾아간 김상현(金相賢)의원에게도 “민국당이 잘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고 한다.

요즘 그의 행태를 보면 과거 그가 자주 말했던 대도무문(大道無門)이니, 대경대도(大經大道)니 하는 말은 한낱 허사(虛辭)였다는 생각이 든다. 국가와 국민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지역주의에 기대어 개인적 보복심이나 불태우고, 뒷전에서 ‘전언’정치나 꾀한다면 전직 대통령의 체모에도 어울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명예조차 손상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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