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의정보고회는 유세장…총선앞두고 잇달아 열려

  • 입력 2000년 2월 20일 20시 02분


20일 오후 서울 시내의 한 경로당. 이 지역 국회의원 P씨의 의정보고회가 개최되기 30여분전부터 몰려든 200여명의 주민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지지호소…사실상 선거운동▼

단상에 오른 P의원은 “여러분의 후원으로 4년간 열심히 일한 덕분에 우리구의 숙원사업을 대부분 해결했다”며 자신의 치적을 열거한 뒤 ‘다시 한 번 기회를 달라’며 16대 총선에서도 지지를 호소했다.

1시간여 동안의 보고가 끝나자 주민들은 빵과 과일 등이 든 선물꾸러미를 들고 삼삼오오 흩어졌고 P의원도 인사를 마치자마자 다음 보고회 장소로 서둘러 출발했다.

16대 총선을 앞두고 현역 의원들의 의정보고회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선거를 코앞에 둔 시점에서 이루어지는 이런 보고회는 겉으로만 ‘의정보고회’일 뿐 실제로는 편법 사전선거운동으로 이용되고 있다.

현역의원들의 ‘사전선거’운동이 노골화하자 공식 선거운동기간이 시작되기 전까지 주민들과 접촉이 불가능한 원외 인사들은 이처럼 ‘불공정 경쟁’을 조장하는 선거제도에 강한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현행 선거법은 의원이 의회활동상을 보고회나 보고서 배부 등을 통해 선거구민에게 직접 보고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선거공약을 제대로 이행하고 있는지 등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케하는 행위로 허용한다는 취지.

그러나 이같은 취지와 달리 의정보고회는 선거가 임박해 ‘의정활동’보다는 ‘지역구사업 치적’을 선전하는 사전선거운동의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선거법에 의정보고회의 개최횟수나 보고서의 배포량 등에 대한 제한이 없어 매일 수차례 보고회를 갖거나 보고서를 무더기로 배포해도 아무런 법적 제약을 받지 않는다.

이에따라 P의원의 경우처럼 현역의원들은 최근 설을 전후해 지역구내 각 경로당과 복지회관 등을 돌며 매일 2, 3차례씩 의정보고회를 개최, 지역주민들에게 ‘치적’을 설명하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김밥 떡 과일등 돌려▼

선거법은 3000원 이하의 다과 제공도 허용하기 때문에 보고회장에서는 김밥 떡 과일 등이 빠짐없이 주민들에게 건네진다.

서울시 선관위의 한 관계자는 “아파트 우편함 등에 무더기로 꽂혀 있는 의정보고서를 불법 유인물로 보고 신고하는 주민들이 많지만 법적으로 문제가 없기 때문에 별다른 조치를 못한다”고 말했다.

▼선관위 "합법행사 단속못해"▼

이런 불평등한 선거운동 양상에 대해 서울지역의 한 원외 지구당위원장을 맞고 있는 S씨(62)는 “현행 선거법은 현역의원들에게는 날개를 달아주고 원외후보들의 발은 묶어놓은 격이라는 비판이 이미 수없이 제기됐지만 제도개선이 되지 않았다”며 “상대후보가 주민들 사랑방까지 찾아다니며 운동하는 것을 알면서도 지켜볼 수밖에 없어 분통이 터진다”고 말했다.

중앙선관위는 지난해 초 선거일 60일전부터 의정보고회를 금지하는 개정의견을 제출했지만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의원들의 거부로 입법화되지 못했다.

<박윤철기자>yc97@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