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부형권/검찰 무기는 '법대로'

  • 입력 2000년 2월 13일 19시 35분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정의의 여신’은 두 눈을 가린 채 한 손에는 칼을, 다른 한 손에는 저울을 들고 있다. 시시비비를 가리는 검찰도 정의의 여신이 그러하듯 상대가 누구이든 법대로 형평에 맞게 처리해야 당사자들이 승복한다.

11일 정형근(鄭亨根)의원 긴급체포에 실패한 검찰이 12일 뒤늦게 법원으로부터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강제구인에 나섰으나 역시 실패로 끝났다. 검찰 안팎에서는 “왜 수사팀이 처음부터 체포영장을 발부받지 않았을까. 그랬으면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라며 의아해 하고 있다.

체포영장 없이 정의원을 잡으러 간 수사관들은 “신분이 확실한 현역의원을 긴급체포하는 법적 근거가 무엇이냐. 영장을 보여달라”는 정의원에게 오히려 역공을 당했을 뿐이다.

한 법조인은 “긴급체포 자체에 법률적 허점이 있었기 때문에 정의원의 ‘꾀’에 쉽게 넘어간 것”이라고 말했다. 처음부터 ‘법(法)대로’ 체포영장을 발부받았다면 강제구인을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는 얘기다.

일반 시민들에게는 서릿발같은 검찰이 정의원 같이 법을 어기고 무시하는 ‘정치인 피의자’들에게는 왠지 솜방망이이거나 고무줄처럼 유연한 경우가 많다. ‘법대로’가 검찰의 가장 강력한 무기임을 망각하고 있는 듯한 인상까지 준다.

특히 ‘눈엣가시’같은 정의원은 23차례나 소환했지만 고소 고발된 여당 거물정치인에게도 그랬느냐는 비판이 야권에서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다.

12일 서울지검에 걸려온 시민들의 항의전화 중에는 ‘정의원 긴급체포’에 대한 비난보다 ‘무력한 검찰’에 대한 질책이 훨씬 많았다. 검찰이 무력해졌다면 그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를 심각하게 따져보아야 한다. 정치적 중립을 의심받아온 검찰이 ‘무력감’을 씻어내는 길은 여야 구별하지 않고 ‘법대로 형평과 공정을 지키며’ 검찰권을 행사하는 것임을 검찰수뇌부는 물론 일선검사들도 명심해야 한다.

부형권<사회부>booku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