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장편소설 '사랑' 펴낸 한승원씨

  • 입력 2000년 2월 11일 19시 55분


사마귀의 혼례는 수컷에겐 장례다. 환희로운 교합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암컷은 앞발로 수컷의 가슴을 찍는다. 그리고 머리부터 고스란히 씹어먹기 시작한다. 어떤 왕거미는 알에서 깨자 마자 모체(母體)를 파들어가며 자양을 얻는다. 어미는 순식간에 우글거리는 새끼들의 밥이 된다.

한승원의 장편 ‘사랑’ 서두를 수놓는 장면이다. 작가는 왜, 인류사의 가장 보편적인 주제를 작품 제목에 올려놓으면서 끔찍한 가족살해의 상징을 끌어들이는 것일까. 독자는 처음부터 미로 앞에 선다.

주인공은 ‘작가 한승원’. 어느날 지야몽이라는 여인이 ‘장흥 판타지’라는 소설을 들고 출판을 도와달라며 찾아온다. 소설을 쓴 사람은 작가와 동명인 ‘한승원씨’. 치매 걸린 어머니를 죽인 후 유골을 들고 고향을 찾는 길에 우연히 지야몽의 차에 동승하게 된다.

지야몽 역시 아픈 가족사를 가진 여인. 그의 아버지는 백정의 딸을 향한 외곬 사랑으로 스스로를 파괴한다. 지야몽 역시 남편과 딸이 시동생에게 살해당한 뒤 자신을 미처 추스르지 못한 상태. 한승원과 지야몽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에게 얽혀든다. 미물과 사람을 넘나들며, 찰나의 육욕과 끝없는 그리움을 오가며 끊임없이 변주되는 ‘사랑’. 아낌없는 애정, 모성애와 이성애 속에 파괴되는 인물들.

그렇다면 희생은 무엇이며 파괴의 동력은 무엇인가. 사랑은 상생(相生)하는 힘인가, 파멸시키는 힘인가. 여느 작품처럼 ‘징하고 끈끈하게’ 감겨붙는 작가의 시선을 따라가다보면 해답이 나타날까. 아니, 작가는 화두만을 던져놓고 끝없는 숙고의 미로 속으로 독자를 유인하는 것인가.

“가학과 피학은 우주의 힘의 율동이다. 사랑은 우리의 고달픈 삶을 버팅기게 해주는 버팀목이고 존재이유다. 영원히 풀리지 않는 우리 삶의 비밀 작법이다.” (작가의 말)

문이당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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