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지자체 미분양토지 5조원어치

  • 입력 2000년 2월 6일 19시 49분


전북 정읍시 북면 태곡리 정읍 제3산업단지. 계획대로라면 첨단시설을 갖춘 각종 전자 공장들이 들어서 있어야 할 곳이다. 그러나 지금 이곳에는 드넓은 보리밭이 펼쳐져 있다.

정읍시가 산업단지 조성을 끝낸 지 4년이 지나도록 공장용지가 제대로 분양이 안되자 인근 농민들에게 보리나 고구마 등 축산 사료를 재배토록 지난해부터 무료로 임대해 주었기 때문이다.

정읍시는 91년부터 6년간 535억원을 들여 31만평 규모의 이 산업단지를 조성했으나 현재까지 14만4000평만 분양됐다. 채권을 발행해 마련한 조성사업비의 이자로 나간 돈만도 지금까지 174억원. 정읍시로서는 엄청난 재정 적자 요인이 되고 있다.

부산 강서구 명지동과 녹산동에 조성된 명지 녹산 택지개발지구도 노는 땅이 많아 부산시의 재정을 압박하는 ‘애물단지’가 됐다.

95년 택지조성사업에 들어간 이 개발지구의 총 분양면적은 31만2000평. 그러나 ‘지반이 약해 채산성이 없다’며 주택건설업자들이 계약을 줄줄이 취소하는 바람에 현재까지 분양된 면적은 고작 1만2000평(분양률 4%)에 그치고 있다.

전국의 지방자치단체와 지방공사가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앞다퉈 조성한 택지 및 상업용지, 산업용지가 제대로 분양되지 않아 오히려 자치단체의 살림을 어렵게 하고 주민 부담만 가중시키고 있다.

▼395만여평 '애물단지'▼

▽미분양 실태와 원인〓6일 행정자치부에 따르면 전국의 자치단체와 지방공사가 조성한 토지 가운데 분양되지 않은 면적은 지난해 말 현재 395만3400평. 감정가격으로 5조4591억원이나 된다.

이중 택지는 116만1400평(감정가격 1조4738억4000만원)이며 △상업용지 55만3400평(1조8260억1000만원) △공공용지 83억8800평(1조2483억1000만원) △산업용지 128만5800평(5206억4000만원) 등이다.

시도별로는 충남도가 계룡신도시 미분양 토지 12만4000평을 포함해 모두 70만7400평이 분양되지 않아 전국에서 ‘놀리는 땅’이 가장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경기도는 학교 동사무소 도로 등 공공용지로 조성한 토지 분양률이 특히 낮았다. 의정부시의 용현지방산업단지(미분양 면적 6만4000평)와 부천시 중동택지개발지구(미분양 면적 3만7000평)를 포함해 67만8000평이 아직 분양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부산시의 미분양 면적도 명지 녹산 택지개발지구를 포함해 49만7000평으로 미분양 감정가격이 1조원을 넘고 있다.

이처럼 분양률이 낮은 이유는 토지의 수요 예측을 제대로 하지 않고 무리하게 사업을 시행한데다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이후 부동산 경기가 침체됐기 때문.

또 대형 할인매장의 등장으로 상업지역의 분양이 예전처럼 이뤄지지 않고 있는데다 주택보급률이 80%선을 웃돌아 서울을 제외한 대부분 지역의 주택용지 분양도 부진한 실정이다.

행자부 관계자는 “특히 민선 단체장들이 무리하게 개발공약을 추진하는 바람에 산업용지 등의 미분양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값인하-할부등 매각 안간힘▼

▽분양 활성화 방안〓서울시는 유찰된 산업 및 업무시설 용지에 대해서는 수의계약으로 매각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매각 가능성이 거의 없는 토지는 용도변경을 검토중이다.

인천시는 토지 공급가격을 4.1∼37.8% 정도 내리고 대금 납부기간을 최장 2년까지로 연장하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었다.

광주시는 직원들의 토지 판매실적을 평가해 특별 상여금을 지급하고 대형 필지의 경우 분할 매각을 하고 있으며 충남도는 무이자 할부기간을 5년까지로 연장하고 매매알선 수수료도 현실화했다.

전북 정읍시는 최근 ‘기업 및 투자유치 촉진조례’를 제정해 공장을 유치하는 사람에게 최고 500만원까지 보상금을 지급하고 있다.

또 국내외 기업이 입주할 경우 각각 2억원씩의 이전비와 시설보조금, 그리고 종업원 1인당 30만원의 고용보조금과 50만원씩의 교육훈련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다.

경기도내 각 자치단체들도 △공단 입주자격 완화와 분양가 인하(의정부시) △토지가격 재감정 및 할인매각(시흥시) △기반시설 추가지원으로 분양가 인하(평택시) 등의 자구책을 마련해 놓고 있다.

<이진영기자·전주〓김광오기자>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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