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민병욱/음모론과 100인위

  • 입력 2000년 1월 26일 19시 26분


음모(陰謀)라는 단어가 주는 이미지는 ‘어둡고 비열한 것’이다. 정당한 사회나 체제에 대한 음흉한 배반과 모략, 사적으로는 거짓과 기만을 연상시킨다. 사전적 의미 역시 ‘남이 모르게 나쁜 일을 꾸미는 것’ 또는 ‘범죄에 관한 행위를 비밀히 의논함’이다. 그러나 음모가 모두 범죄는 아니다. 형법은 ‘음모는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처벌되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내란 외환 강도 통화위조 방화 폭발물사용 등 중요 범죄만이 음모행위 자체로도 처벌받게 돼 있다.

▷100이란 숫자는 ‘모든 것’ 또는 완성의 의미를 지녔다. 성수(成數)의 한 극점일 뿐이지만 대표숫자로 통용된다. 백이 다른 뜻글자와 합치면 전체 최종 성공을 표현한다. 백성은 모든 국민, 백약은 모든 약, 백수는 장수(長壽)와 같은 뜻이다. 백일잔치는 태어나 백일을 넘겨 성공적으로 가족 성원이 되었음을 축하하는 것이며 100인의 의견이라면 꼭 100명의 의사라기보다 옳은 의견을 대변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고대에는 100인 심판(켄툼비리)이라는 것이 있어서 국가 중대이익에 관계되는 쟁송거리를 최종적으로 판결했다.

▷총선시민연대가 100인 풀뿌리 유권자의 판정을 거쳐 낙천 낙선대상자 명단을 발표한 것은 나름대로 100이 주는 의미, 국민 전체의 뜻을 담았다는 상징성을 드러낸 것이다. 흠 잡을 수 없게 100인 검증의 의례를 거쳤으니 그것은 모든 시민의 의견으로 보아도 좋으며 순수성 도덕성도 다 갖췄다는 뜻일 터다. 게다가 그들이 낙천대상자 선정작업을 벌인 곳도 87년 6월항쟁의 불씨를 지폈던 서울 중구 대한성공회였으니 온 시민이 함께 정치혁명의 완성을 이루려한다는 이미지도 생각한 것이리라.

▷총선연대가 중시한 그런 이미지에 정면반발하며 정치권이 들고나온 것이 음모론이다. 당 오너인 김종필명예총재에게까지 명예로운 은퇴를 권고한데 대해 우선 자민련이 발끈해 총선연대의 순수성과 도덕성에 의문을 제기했고 한나라당도 이를 거들고 있다. 상징적으로 보면 시민단체가 내세우는 ‘명징성 순수성’에 정치권은 역으로 ‘반(反)순수성 모략성’이라고 몰아붙이는 형국이다. 일부에서는 ‘다 바꿔’에 ‘못 바꿔’가 맞선 것이라고도 한다. 결론이 어떻게 나든 정치는 태풍 한가운데에 들어있다.

<민병욱 논설위원>min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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