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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9년 12월 8일 19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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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어디까지나 ‘임시직’. 언제 ‘밥줄’이 끊길지 몰라 ‘잠못 이루는 밤’이 많다.
“아들(중1)과 딸(초등4)은 커가죠, 안정된 직장은 없죠. 참 막막합니다. 프로팀의 코치라도 맡아야 하는데….”
이런 날이 오리라 생각해 술 담배는 입에 대지도 않았다.
용돈이랄 것도 없었다. 84년 OB에 입단, 10년간 매달 3만원을 넘은 적이 없다. 93년 골든글러브 수상 뒤 10만원, 95년 타격왕이 된 뒤엔 ‘거금’ 30만원을 아내한테 타쓴게 기억에 남을 정도다.
‘이렇게 지독하게 살았건만…. 지금의 나는 뭔가.’ 무거운 마음 가눌 길이 없다. 그나마 가족이 이슬을 피할 수 있는 아파트 한채라도 마련했으니 다행이다.
김광림은 OB가 86년 연고지를 대전에서 서울로 이전, 대전을 떠날 때를 잊을 수 없다.
3년전 받았던 계약금 1500만원에서 남은 800만원을 털어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방 한칸을 얻었다. 어머니, 형에 아내까지 모로 누워 잠을 청해야만 했다.
그러다 89년 알고 지내던 은행원의 조언을 받고 두 눈 질끈 감고 돈을 빌려 일을 저질렀다. 이게 그의 생에 첫 재테크.
강동구 명일동의 한 아파트를 3500만원에 샀는데 4년뒤 집값이 1억7000만원까지 올라 ‘한몫’ 잡았다. 그러나 이렇게 불린 돈은 94년 쌍방울, 97년 현대로 옮기다보니 큰 돈을 모으기 힘들었다.
〈김호성기자〉ks10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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